무서운 썰 타이핑하기
불 꺼진 원룸 방 안, 길쭉한 스탠드조명이 작은 가로등처럼 우두커니 서있다. 빛이 닿는 스탠드 밑에는 정하가 노트북에 얼굴을 가까이 데고 타자를 치고 있다. 엔터 소리 후, 정하의 손가락이 멈추자 방 안에는 정적이 가득했다.
정하는 좌식 나무테이블에서 엉덩이를 빼며 뒤로 몸을 젖혔다. 그러자 바로 뒤에 있던 침대에 등이 닿았다. 귀에서 뺀 이어폰을 노트북 옆에 올려두고 뒤쪽 침대로 쭈욱 기지개를 켰다. 몸을 침대에 기댄 채 몇 초간 기절한 사람처럼 미동도 않던 정하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어둠 속을 걸어 다니던 정하는 스탠드 조명 속 테이블 앞으로 다시 들어와 앉았다. 물이 반쯤 들어있는 유리컵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 다시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메일함에 알림이 떠서 클릭해 보니 문경엽 교수님께 메일 한통이 와있었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 20분, 이 시간에 메일을 보냈으니 어떤 용무가 있는지 예상이 됐다.
-정하야. 다른 학생들에게 맡겼던 채록자료인데 아직도 연락이 안 돼서 급하게 너한테 부탁한다. 내일까지는 꼭 필요해서 늦은 시간이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낸다. 메일 확인하면 연락 주렴.
문경엽교수님은 정하가 다니고 있는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구비문학을 연구하는 문교수는 전국 각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의 옛날이야기를 채록해 온다. 영상이나 녹음 파일로 된 채록물은 정하 같은 학과 학생들이 소정의 알바비를 받고 타이핑한다.
가끔 다른 학생에게 맡겼던 채록자료가 제시간에 마무리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채록물이 돌고 돌아 정하에게까지 오게 된다. 정하는 절대 마감기한을 넘기지 않는다. 오늘처럼 급하게 요청이 온 채록물도 교수님이 부탁한 기한을 최대한 맞추는 편이다.
정하는 문교수가 첨부한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영상이 몇 분짜리인지 확인했다. 60분짜리이니 한 시간 반정도만 타이핑하면 끝날 것이다.
밤늦게 온 이메일 때문에 잠도 줄여가며 타이핑을 해야 하지만, 정하는 이런 상황에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수입이 꽤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미룬 알바를 대신하는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표한 적이 없다.
최저시급이 4,580원인데 이 60분짜리를 타이핑하면 3만 원 내지 5만원, 알바비가 들어온다. 몇 시간씩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효율이 좋은 수입원이다.
타이핑 내용 중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시골 어르신들의 으스스한 기묘한 이야기다.
여느 학생들은 무서운 으스스한 채록물을 타이핑하다가, 그 이야기에 몰입해서 등골이 오싹해져 타이핑을 멈출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하는 딱히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언젠가 정하가 학과친구인 은정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이야기에 몰입하지 말고 그냥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랬더니 은정은 눈이 동그레져서는 지난밤 타이핑했던 이야기에 대해서 설명했다.
“신안군 하의도에 어떤 할머니 이야기야.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옆에 엄마가 없더래. 그래서 마당에 나가봤더니 엄마가 논을 내려다보며 뒷짐을 지고 멍하니 서있었어. 뭐하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논을 가리키며 도깨비불이라고 했대. 그래서 그 할머니가 마당에 나가서 내려다봤더니 진짜 푸른색 불이 논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대. 응? 정하야. 이래도 안 무서워? 도깨비불이 집 밑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는데?”
정하는 동화책 읽어주듯 연기하는 은정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귀신이 나온 것도 아닌데 이게 무서워?”
은정은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어르신이 시집온 지 얼마 안 된 어린 시절 이야기야. 날마다 지나가는 논두렁길이 있었는데 그곳만 지날 때면 꼭 넘어졌대. 매번 넘어지던 곳이니 조심조심 걸어가다가도 누가 발목을 딱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면서 꼭 그 길만 지나가면 넘어졌다는 거야.
어느 날은 추수할 때 새참거리를 머리에 잔뜩 이고 가는데 여지없이 또 넘어져서 새참이랑 다 엎어졌다는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혼자 주저앉아 울면서 귀신한테 쌍욕을 퍼부었대. 그 후로는 안 넘어졌대. 신기하지 않아? 귀신하고 한판 뜬 거지.”
정하도 채록한 이야기들 속 내용이 신기할 때가 종종 있긴 했다.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어떠한 존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효율적으로 타이핑을 하려면 이야기에 몰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말소리를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는 게 타이핑 시간을 최소화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다른 학생들처럼 제출기한에 맞출 수가 없다.
채록된 영상 속 사람이 말하는 옛날 기억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사실인지 왜곡된 기억인지도 모를 이야기에 무서워서 일을 제대로 못했다니, 정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채록물속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을까? 연세 가득한 어르신들의 가물가물한 하소연일지도 모를 것들에 시간을 허비할 세가 없다.
채록타이핑 알바의 최대 장점은 짧은 시간, 고임금 보장이다. 시간이 금, 손해를 보면 안 된다.
정하는 기지개를 쭉 켜고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월요일 저녁, 수업을 마치고 폰을 확인해 보니 학과동기 은정에게서 부재중전화 3 통과 문자가 와있었다.
-혹시 아직 수업 중이야? 전화를 안 받길래. 끝나면 연락 좀 줄래? 급한 일이야.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번가고 바로 은정이 전화를 받았다.
“정하야! 도와줘!”
은정은 정하와 국어국문학과 같은 학번 동기다. 12학번 2학년인 두 사람은 학과 내에 있는 구비문학 동아리에 들어갔다. 좋아해서 들어온 건 아니다.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은 소설, 시, 구비문학, 시나리오 이렇게 네 개 동아리중에 의무적으로 하나씩 들어가야 하는 룰이 있다.
은정은 그중에 그나마 사람이 적을 것 같은 구비문학에 들어왔고, 정하는 채록타이핑 알바를 할 수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구비문학 동아리를 선택했다. 같은 학년에, 동아리도 같은 두 사람은 매일 함께 점심을 먹는 점심메이트가 됐다.
은정의 하소연은 이러했다. 문교수님에게 채록자료를 받아서 타이핑하고 있는데 내용이 너무 무서워서 여간해서는 마무리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 겪은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꿈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진짜였다 말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다 죽었다는 말도 하는데 이걸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받아 적기만 하면 되니까 꿈인지 진짜인지는 상관없지 않아?”
정하의 말에 은정은 망설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건 상관없다 치더라도 내용이 진짜 이상해. 전쟁 중이었던 건지는 몰라도 군인들이 식구들을 다 끌고 가고 그랬대. 근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너무 생생하게 말해서 진짜 같고 무섭더라니까.”
전화 너머로 은정의 말끝이 떨리는 게 들렸다. 정하는 은정의 부탁을 거절하길 포기했다.
“기한은 얼마나 남았는데?”
“3일 남았어. 그렇게 길지도 않아.”
3일이면 그리 촉박하지도 않다. 이렇게 된 김에 알바비라도 더 벌어야겠다 싶어 정하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하는 원룸방에 들어오자마자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에 앉았다. 메일함에 새 메일이 왔다는 알람이 떴다. 은정은 전화로도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부탁한다는 내용과 함께 채록자료들을 첨부해 보냈다.
보통 첨부파일 제목은 채록한 날짜와 인터뷰 대상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2013년 7월 5일,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이재윤
아직 재생을 누르기 전, 영상 첫 화면에 한 할아버지가 보였다. 아직 영상을 재생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얼굴에는 생기나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무표정의 재윤 할아버지는 멍하니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하는 무표정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은정이 무섭다고 했던 이유가 납득이 됐다. 삐쩍 마른 몸에 표정도 없으니 분위기가 이상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정하에게 할아버지의 외모는 아무 상관없었다. 정하는 지체 없이 재생버튼을 클릭하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