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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무표정_재가 되어 나리는 하늘

by 정유철

정하는 일주일에 한 번 이모 집에 가서 사촌동생 주현의 공부를 봐준다. 중학교 1학년인 주현은 미술 특기생이다. 공부를 잘하거나 좋아하진 않지만, 정하가 책상 옆에 앉아 지켜보면 꽤나 공부를 하려고 한다.


이모네 집은 대학교 후문을 지나 고인돌공원만 지나면 바로 있는 아파트다. 정하가 지내는 원룸촌과도 가깝다. 아침 일찍 걸어오는 길에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숨을 쉴 때 콧속 깊숙이 얼얼해졌다. 눈이 오려는지 하늘이 온통 구름에 뒤덮여 정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주현의 방, 두 사람이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펴 놓았다. 주현이 문제를 푸는 동안 정하는 눈 내리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이 어둡더니 역시 눈이 오고 있다. 아무 말도 없는 방 안에는 주현이 펜촉을 넣었다 뺏다 하는 딸깍 소리만 들렸다. 주현은 정하를 바라보다가 말을 걸었다.

“언니, 오늘 무슨 고민 있어? 다른 생각하는 것 같은데?”

창밖 풍경에 빠져 있던 정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 기대 있던 의자에서 중심을 잃을 뻔했다.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주현의 똘망똘망한 눈을 보니 평소와 다른 자신이 고민이 되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주현의 문제집을 가리켰다.

“넌 왜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많아? 얼른 문제나 풀어. 네가 얼른 풀어야 나도 공부 봐주고 갈 거 아니야.”

주현은 그럼에도 눈을 가늘게 뜨며 미심쩍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뭔가 평소랑 다른데..”

정하는 겁을 주려고 눈에 힘을 주고 주현을 바라봤다.

“문제 풀기 싫다고 자꾸 다른 말할래?”


주현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문제집을 보며 지문으로 시선을 옮겨 읽기 시작했다. 다시 문제를 풀자 정하의 눈에도 힘이 풀렸다. 조용한 방 안에는 펜과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베란다 창밖 너머 소리 없이 눈 내리는 풍경에 정하의 시선이 갔다.

멍하니 눈 내리는 걸 보던 정하는 재가 흩날리는 게 눈 내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나 중얼거렸다.


문제를 풀던 주현의 시선이 어느새 정하를 향해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깜빡거렸다.

“누가 그랬는데?”

안 그래도 문제 풀기가 싫었는데 건수를 잡았는지 주현은 계속 물었다. 정하는 그런 태도에 반응하지 않고, 펜으로 주현 앞에 있는 문제집을 탁탁 쳤다.

“나는 네가 문제를 다 못 풀어도 시간이 되면 가야 한다니까? 얼른 풀어야 내가 공부를 봐주고 효율 좋게 끝날 거 아니야.”

주현은 정하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주현이는 할 말이 있을 땐 이렇게 얼굴을 정확히 마주 보며 말한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언니가 평소랑 달라서 궁금했어.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주현은 정하가 무슨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말을 마치고 얼른 교재로 시선을 옮겼다. 교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자 정하도 굳이 말을 보태지 않고 창밖을 바라봤다.

마을이 다 타서 재가 돼서 내리면, 정말 눈 내리는 것처럼 보일까?

주현이 문제집을 다 풀고 정하를 부를 때까지, 정하는 머릿속에서 재가 휘날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재가 눈처럼 휘날리면 검정색 눈이 내리려나..”

정하는 재윤 할아버지가 대체 무엇을 봤던 걸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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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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