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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무표정_느려지는 나의 발걸음

by 정유철

2012.12.3.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이재윤 / 학교로 끌려온 동네 사람들


산 밑 학교라 그늘져서 잘 안 보이는디, 사람들이 잡혀와서 앉아있는디 어수선했어. 애기들이 울어싸서 시끄럽고 난리가 아니었지. 갑자기 조용히 하라면서 누가 하늘로 총을 몇 발 갈기더라고. 어른들은 조용해졌는디 엄마들 등에 업혀있던 애기들 울음소리가 더 커졌어.


나도 끌려온 어무니 헐레벌떡 쫓아갔다가 그제야 상황이 심상찮은 걸 알았지. 우리 형님은 묶여있는 채로 울고 있었어. 동생이 아파서 가야 한다고 군인 바지가락 붙잡을라고 하는디, 옆에 있던 일순이네 아버지가 우리 형님 보고 “애들은 보내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그랬더니 군인 두 사람이 와서 일순이네 아버지를 개머리판으로 후들겨 패기 시작하는 거야. 아무도 나서서 말리질 못했어. 실컷 패더니 학교 건물 뒤쪽으로 일순이네 아버지를 데려갔어. 그날따라 컴컴하고 추운 날이었지.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운동장에 꿇어앉아서 다들 덜덜 떨고 있었어. 찬바람이 산을 타고 학교 운동장으로 내려와서 불 때마다 사람들 몸이 오들오들 떨렸지. 근디 우리 형님은 발가벗겨져서 운동장 흙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으니 더 추웠겄지.


형님 옆으로 아버지랑 어머니가 지나갈 때, 형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디 어머니랑 아부지를 부르질 않았어. 일순이네 아저씨 끌려가고 난 후에 일순이도 같이 끌려가는 걸 봤거든. 가족인 거 들켜봤자 좋을 게 없는 것 같으니까 일단 서로 모르는 척 한 거야.


웬 대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가운데서 “공산당이 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도와준 사람은 공산당으로 간주하고 끌어내!”라고 했어. 서로 고발하라고 했는디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으니까 지들 맘대로 기준을 정해서 공산당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골라냈어. 머리가 짧거나 군용 팬티를 입은 사람은 군인일 수도 있으니 골라내고, 손끝에 기름때가 묻어 있어도 총 만진 걸 수도 있다면서 걸러냈어. 별의별 이유로 사람들을 추려내서 학교 뒷산 있는 데로 줄지어서 데려갔어.


운동장을 가운데로 갈라놓고 한쪽에는 공산당으로 고른 사람들, 한쪽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눴어. 우리 형님은 괜찮았는디 우리 어머니랑 아버지는 학교 뒷산으로 끌려가는 줄에 서 있었어. 대체 왜 그 줄에 있었는지 몰라. 내가 옆에 가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엄매! 아배!" 소리 질렀는디도 듣질 못하고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갔어. 형님도 그 자리에 무릎 꿇고서 한번을 못 쳐다봤지. 어머니 아버지랑 가족인 걸 알면 괜히 끌려갈 거 아니야.


나는 그때 발을 동동 구르고 형님 옆에 가서 어떻게 해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 근디 내가 몸도 없이 혼만 떠다니는디 말이 들릴 리가 있겠어.


사람들 절반은 줄지어서 학교 뒷산으로 끌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학교에 들어가서 자야 한다고 했어. 마을이 아직 정리가 안 됐다고 했나 그랬어. 온 동네 사람들이 교실 나무바닥에 이불도 없이 누워있는디 잠이 오겠어? 나도 형님 옆에서 계속 울었어. 너무 추웠는지, 무서웠는지 사람들 전부 다 뜬눈으로 밤을 샜어. 그 상황에서 누가 잘 수 있겠어. 식구들 끌려가고, 마을 사람 전부가 영문도 모르고 잡혀왔으니 말이야.


다음날, 날이 밝으니까 군인들이 학교 안에 있던 사람들은 풀어줬어. 지난밤에 학교 뒷산으로 끌려간 사람 중에 식구가 있던 사람들은 뒷산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을 방향으로 나갔지.


난 형님 뒤만 졸졸 따라다녔어. 그때 뒷산 쪽에서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난 거야. 아부지랑 어머니가 거기로 끌려갔으니까 나도 그쪽에 가고 싶었는디 형님은 거기 안 가고 집 쪽으로 가더라고. ‘왜 엄니, 아부지 찾으러 안 가지?’ 하고 형님 얼굴을 보니까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더라고.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형님은 우리 집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어. 나도 형님 뒤를 따라서 달려가는디 우리 집 쪽, 아니 우리 마을 위로 연기가 가득한 거야. 큰불이 났어. 불이 난 걸 보고는 형님은 더 빨리 달렸어. 그래서 그제야 나를 데리러 집에 가는구나 싶었지. 형님이 달리는 도중에 눈에서 눈물이 줄줄 나는디 닦지도 못하고 한참을 달리기만 했어.


나도 형님을 따라 달렸어. 근디 너무 빨라서 자꾸 멀어지는 거야. 내 몸이 아니고 혼이 뛰어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발을 땅에 내딛을 때 느낌이 평소랑 달랐어. 힘차게 발을 구를 수가 없고 뛰고 있는디도 자꾸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 같았어. 형님 뒷모습이 자꾸 멀어지는디 무섭더라고. 저 너머에 마을이 불에 타는 연기는 자욱하고 집들은 이미 다 타고 있었어. 그런디도 달리는 걸 보면 불구덩이를 뛰어다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형님 같이 가, 같이 가!" 하면서 달렸는디 내 소리는 못 듣고 계속 달렸지.




정하는 차 앞유리에 얇게 낀 성에가 히터 바람에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재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정말 꿈이었을까? 그때, 주은이 오전 대회 일정을 마쳤다며 이모 회사에 잠시 들렀다 가자고 했다. 이모는 신월동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화학 공장의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공장 부지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위압적인 체격의 경비원 세 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릴 필요 없이 입구에서 이모 이름을 대고 물건을 맡기면 된다고 했다. 정하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주은에게 이모가 부탁한 USB를 건넸다.


그냥 공장인 줄만 알았는데, 삼엄한 경비에 정하는 조금 놀랐다. 해안도로에서 공장으로 들어오는 길 양옆에는 철조망이 빈틈없이 쳐져 있었고, 학교 운동장만큼 넓은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중에서도 선명한 빨간색 관광버스 한 대가 유독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줄지어 공장 입구로 향하는 모습을 정하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맨 앞에는 가이드로 보이는 여자가 경비원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관광객들을 두 줄로 세웠다. '공장에 뭐 볼 게 있다고 관광버스까지…' 정하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이, 주은이가 관광객들 근처를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자동차 극장에 온 관객처럼, 정하는 주은이가 가이드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주은이는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바로 물어보는 성격이었다. 아마 정하와 같은 의문을 품고 가이드에게 질문을 던졌으리라. 그런데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가이드와 주은이가 경비원에게 다가가 몇 마디 나누더니, 세 사람이 정하의 티볼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정하는 덩치 큰 경비원이 차 문을 두드리는 상상을 하며 덜컥 겁이 났다. 결국, 노크 소리를 듣기도 전에 차에서 내렸다. 다가오는 주은이를 향해 눈을 크게 뜨고 “뭐야?” 하고 입 모양으로 물었다.

그때 가이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정하는 대답할 틈도 없이 가이드의 다음 말을 들었다.

“이 친구 보호자 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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