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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Dec 30. 2022

"문이 열립니다."

낯선이와 같은 공간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온다. 순간 긴장과 어색함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얼굴을 살피는 척 거울을 통해 상대를 훑는다. 상대는 나와 반대쪽에 자리 잡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폰 화면이 꺼져있는 걸 보니 그 사람도 내가 신경 쓰여 긴장된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는 그렇다. 혼자 있을 땐 맘 편히 방귀도 뀔 수 있지만, 타인이 들어서면 세상 가장 어색한 장소가 된다. 그 순간엔 없던 신앙까지 생겨나 신을 탓하게 된다.


 엘리베이터에 혼자 탈 때 안정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내 것도 아닌데 이곳은 나만의 영역이 된다. 문이 닫히기 직전 누군가 탈 것 같다면 괜히 닫힘 버튼으로 손이 간다. 상대가 선한가 악한 가는 우선적으로 중요치 않다. 그저 내 공간에 들어오려는 게 불편하다.


 하지만 매몰차게 닫힘 버튼을 연타할 수는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주변의 인식을 신경 쓴다. 나쁜 사람으로 찍히기 싫어 결국 합승을 허락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망상 회로를 풀가동한다. 

 '갑자기 칼을 꺼내면 어쩌지? 이 사람 우리 건물 사람 맞나? 왜 마스크를 쓰고 있지? 범죄자인가? 나 오늘 밤 뉴스에 나오게 될까? CCTV로 경비아저씨가 지금 보고 계시겠지?'

 단 둘이 탄 엘리베이터에서 굳이 내 옆에 서기라도 하면, 곧장 지인에게 실시간 생중계를 하며 구조요청을 부탁하게 된다.

 결론은 당연히 아무 일도 없다. 어쩌면 상대도 똑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나를 제압하기 위해 방어 가능 거리까지 좁혀왔을지도. 어쨌건 망상은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타인과의 관계도 그렇다. 연을 맺는다는 건 타인의 엘리베이터에 합승하는 것과 비슷하다.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해도 상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다가가는 쪽이 더 천천히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웃는 얼굴로 마주해도 상대는 내 주머니 속에 칼이 있지 없을지에 더 관심이 많을 테니까.


 타인의 마음에 들어가려면 문 밖에서부터 나를 인증해야 한다. 공항 검색대를 지나, 압박면접 인터뷰를 마치고, 품질안전검사를 통과해야만, 상대 마음의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다간 곧바로 비상벨을 누른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며 얼굴을 몇 번 익히고 나면 열림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인사를 주고받을 수 도 있고, 더 가까운 이웃이 될 수도 있다. 엘리베이터에 타인과 함께 탈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 시간을 기다려 줄 수 있어야 된다.


 엘리베이터는 놓쳐도 결국 다시 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저 버튼만 누르고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탑승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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