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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Apr 07. 2023

날씨가 내 마음 같을 수는 없지.

사람 입장이라는 게 참 손바닥 뒤집듯 약았다. 예전에는 반대로만 통보하는 일기예보에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기괴한 정확도에 불만이 가득하다.


실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다. 기상청 사람들이 야유회를 계획했는데 당일날 비가 퍼부었다는 말. 오답노트로 작성하면 빼곡할만한 만행(?)에 신뢰도는 나락이었다. 비 온다고 하더니만 종일 한 방울도 안 떨어질 때도 많았고, 흐리다더니 소나기가 스콜처럼 지나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 잘 맞아서 탈이다. 그런 생각이 든 건 캠핑을 다니면서부터다. 거참. 날씨라는 게 희한하다. 꼭 주말만 되면 비가 오더라. 평일 내내 쨍쨍하고 극심한 더위가 지속되다가도 꼭 주말이면 비가 온다. 평일에 오고 주말에 안 오면 좋으련만... 신을 믿진 않지만 이 정도면 절대적인 존재의 괘씸한 장난이 아닐까 의심되기도 한다.


캠핑장 예약은 보통 한 달 전에 마친다. 캠핑장에 따라 빠르면 3달 전에도 예약한다. 그마저도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하듯 예약창이 땡 하자마자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때부터 날씨를 예측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억지다. 그래도 최소한 전 주에는 알면 좋으련만...


캠핑일 전 주만 해도 캠핑 당일은 화장할 걸로 예측된다. 주말 내내 마음이 들떠있다. 아직 한 주가 남았음에도 벌써 마음이 붕 떠있다. 평일 한 주쯤이야! 가뿐히 견뎌주지!


월요일 아침 일기예보에 아이콘들이 요동을 친다. 노란 햇살로 가득하던 날씨는 회색 구름과 허연 빗방울로 변해있다. 하루 만에 붕떴던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참. 어쩌다 한 번이면 몰라도 캠핑을 예약한 주말만 되면 늘 이렇다. 남들은 찾아서라도 간다는 우중캠핑인데, 이딴 행운이 왜 하필 나한테 와버린 건지... 할 수 있다면 사양하고 싶다.


어릴 때 나는 비 오는 게 좋았다. 정확히는 비 맞는 게 좋았다.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어학교가 끝나면 우산이 있어도 일부러 비 맞으며 오기 일쑤였다. 친구들과 축구하길 좋아했던 내게 비 오는 날씨는 더할 나위 없었다. 덥지도 않고 힘도 덜 들고. 딱 초등학생 때까지였다.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비를 함부로 맞을 수 없게 됐다. 여전히 비를 좋아했지만 현실의 벽에 막힌 거다. 일기예보에 없던 갑작스러운 비가 반갑기도 했다. 대피할 수 없는 갑작스러움에 합법적으로(?) 비를 맞을 수 있으니까. 역시 비는 시원하고 기분 좋았다.


성인이 되고서부터 비는 점점 골칫거리가 됐다. 군대에서는 특히나 더 비가 문제였고, 어른이 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건 꽤나 꼴사나운 모습 같아 보였다.

여전히 비는 좋았다. '비' 자체만 좋았다. 우산을 써도 바지가 젖는 게 싫었고 신발이 질척대는 게 싫었다. 차라리 확 맞으면 모를까, '비를 막았는데도 젖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이젠 일기예보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비표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불만이 쌓이는 지경이 됐다.


다 커서도 신나게 비를 맞고 다닌다면, 어릴 적처럼 계속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건 똑같은데 내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비가 됐다. 내가 귀농을 하지 않는 이상은 비가 반가울 일은 크게 없을 것 같다. 가수 비 정도 돼야 만나면 반가우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비뿐만 아니라, 내가 자라면서 수많은 울타리를 만들고 행복이 다가오는 걸 막고 있진 않은가? 당장에라도 비를 반가워할 마음을 품으면 시원함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또 어떤 행복들이 바로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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