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인 따님께서는 어릴 때부터 똘똘했다. 호기심이 많아서 뭐든지 먼저 관심을 보였고, 암기력이 좋아 혼자 이것저것 기억했다.
어릴 적부터 유튜브로 숫자노래를 보며 스스로 수를 배우고 숫자가 보일 때마다 읽어댔다.
한글은 따로 보여주지 않았는데 어린이집에서 배워와 길거리 간판들에서 아는 것들은 죄다 말하며 다녔다.
말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저런 어휘는 어디서 배워왔나 싶다.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환생한 건 아닌지 의심까지 된다.
힘들게 주입하지 않아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참 똘똘하다 싶다. 그런데 원래 부모들은 다 자기 자식이 천재라고 하잖는가. 부모의 기대감이 올라가면 아이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그 호들갑이 싫어서 주변사람들의 칭찬에 무던하게 침묵했다. 정말 천재라면 닦달하지 않아도 잘할 거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둘째인 아드님은 한 배에서 나온 게 맞나 싶다. 얼굴이나 까부는 걸 보면 영락없는 도플갱어인데 성향은 너무 다르다.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따님과는 달리 무조건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 그의 대쪽 같은 심지로 인해 탄생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것은 벌레와 자동차뿐. 로봇 같은 것도 딱히 관심 없다. 장난감은 무조건 자동차와 벌레. 그 와중에 진짜 벌레는 무서워서 날파리 하나에도 기겁한다. 그리고 괴물에도 환장한다. 아기자기한 괴물인형이 아니라 어른들이 봐도 징글맞은 그런 괴물을 좋아한다. 아내분께서는 질색하는 모양인데 나는 긍정적으로 발전시켜 보려 생각한다. 영화 '에일리언'을 탄생시킨 작가도 어릴 적부터 징그러운 괴물들만 그려서 부모가 걱정했었다는데, 그 괴물이 역사에 남을 캐릭터가 됐잖은가.
아드님은 말도 느리다.
원래 아들은 딸보다 발달이 좀 느리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좀 느린 것 같다. 우선 발음이 약해서 시옷 소리에 약하다. 혀 사이로 '스으으'하고 나오는 약한 컨트롤을 못한다. 혀 끝을 간드러지게(?) 사용하지 못하고 뭉툭하게 써서 디귿 소리만 난다. 혀가 짧은 건 아닌 듯하다. 어릴 적 손을 쓰는 것만 봐도 소근육이 약한 것 같은데 그게 혀를 쓰는데도 적용되는 듯하다.
발음이 언어에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글 습득도 조금 다르다. 따님이 워낙 빨라서 더 비교가 되는데 아드님은 한글이 약하다. 숫자를 외우는데도 한참 걸렸는데, 한글은 자음도 모음도 버겁다. 조금만 헷갈려도 멘붕이 오는 아드님은 옆에서 봐도 휘몰아치는 머릿속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헷갈리면 비슷하게라도 써야 하는데 전혀 다른 이상한 것들이 튀어나온다. '지금 날 놀리나?' 싶은 수준으로.
그 와중에 알파벳은 기똥차게 안다. 유일하게 누님에게 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1년 반 만에 알파벳을 몽땅 삭제한 따님 앞에서 아드님은 당당하게 영어를 읽고 알려준다. 기역 니은 디귿도 헷갈리면서...
부모로서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을 접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당연히 내 자식은 잘하고 잘됐으면 싶으니까. 더욱이 다른 아이와 비교하게 된다면 기대감은 불안과 초조함으로 변한다. 이게 가장 위험한 일이다.
내 욕심 때문에 아이가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 무언가를 강요하는 건 아닌지. 아이의 그릇보다 많은 걸 들이부으면서 넘쳐흐른 것들을 아이 탓으로 돌리는 건 아닌지.
두 아이를 지켜보면서 느낀 건, 어쨌건 성장한다는 거다. 서로 다른 자신만의 속도로 배우고 깨우치며 흡수해 간다. 깨작깨작 키도 크고 있다.
특별한 이상이 있지 않다면, 결국 부모가 얼마나 차분하게 지켜봐 줄 수 있는지의 몫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성장한다. 성에 안 찰지라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니 지켜보자. 내 욕심으로 채찍질하지 말고, 편하게 앉아 느긋하게 그 성장을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