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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Sep 22. 2023

왜 나만 이렇게 힘든걸까?



겉은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한껏 꾸미면서, 그 속내를 한 커플만 들춰도 엉망이다. 부끄러운 모습은 최대한 안쪽에 숨기고 남들에게 보여줄 것만 꺼내 한껏 치장한다. 이게 진짜 나인지 가면인지 스스로도 헷갈린다.


신도시에는 전봇대가 없다. 웬만한 도시에도 조금 큰 도로에는 전봇대가 없다. 하늘을 가르는 수십 가닥의 전깃줄이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땅속에 묻힌 지 오래다. 사실 사라진 줄도 몰랐다.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녔던 터라 그게 원래 모습이라 생각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나는 전봇대와 같다.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게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날 이해 못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우울이 넘치고 고독이 덧씌워졌다. 힘들 땐 힘들다고 하면 될 것을 그깟 이미지 좀 챙기겠다고 왠 괜찮은 척인지...



우연한 기회에 사람들과 가볍게 속내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나는 사실 이렇다. 아무리 저래 보여도 이렇다. 그런데 내가 이런데 이런 줄 모를 거다. "

평소 내가 보인 천둥벌거숭이 같은 모습과 다른 무채색의 속내를 이야기했다. "어머 몰랐어!" 따위의 대답은 아니어도 뻔한 연민쯤은 돌아올 줄 알았다.


"맞아! 나도 나도!"


예상 못한 반응이다. 어제 드라마 봤냐는 말에 대꾸하듯 가벼운 대답에 잠시 몽롱함을 느꼈다.

이게 아닌데.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을 듣고 위로해 줄 줄 알았는데.


나는 오기 부리듯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는 이러저러 어떠해. 어때? 나 진짜 힘들겠지? 나 진짜 불쌍하지? '


그동안의 속앓이를 자랑하듯 하소연한다. 내가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나 정말 힘들었을 거란 인정을 받기 위해.


"와! 진짜 나랑 똑같아!"


처음에는 지기 싫은(?) 마음에 누가 더 불행한지를 가리는 배틀이었는데 이야기가 쌓일수록 내 고민이 보통의 그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구나. 다들 멀쩡한 껍데기 속에 똑같은 전깃줄이 뒤엉켜있구나.


SNS에 보면 불행을 뽐내는 글이 넘쳐난다.

꼰대상사 때문에 힘들어요.  와이프 때문에 힘들어요. 남편 때문에 속터져어요. 남자 친구가 이래요. 여자 친구가 저래요.

뭔 내용인가 하고 눌러보면 현실이 이럴 수 있나 싶다. 다들 힘들구나. 아니, 나보다 더 힘들구나. 심지어 많구나! 하지만 와닿지 않는다. 익명에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실제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을 온전히 위안 삼기 어려웠다.


그런데 매일 이야기를 나누던 내 곁의 사람들이 똑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건 충격이었다. 물론 남들도 힘들다고 해서 내가 안 힘들어지는 건 아니다. 그저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녹아내린듯한 감정이 큰 위안됐다.


나는 전봇대에 걸린 전선이 좋다. 주관적인 미적 감각은 기하학적으로 설켜있는 모양은 말 그대로 뭔가 있어 보인다고 느낀다. 수가닥의 기다란 검은 선이 이렇게 요란스러운데 평소에는 인식조차 못한다. 늘 지나던 길도 고갤 들어 '봐야지!'하고 작정한 뒤에야 눈에 들어온다.


다른 사람들이 내 고백을 듣고 어쩜 그리 가볍게 동의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다. 그들은 그냥 지나쳤던 거다. 나만 그 줄을 붙들고 있었을 뿐.


마음도 같지 않을까? 무시하면 될 것을 굳이 쳐다보면서 "저 줄이 싫어!"하고 떼를 쓴다. 신경 끄면 있는지도 모를 것을. 그냥 앞만 보고 가자. 머리 위 거미줄은 저 뒤로 흘러갈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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