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봄비가 내린다. 내리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를 만큼 조심스레 안갯속에 숨어 내린다. 우산을 접어도 될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죄다 쓰고 다니니 멋쩍게 우산 아래 숨는다.
원래 봄비가 이런 느낌인가?
조금 더 굵직한 빗방울로 세차게 땅 위를 노크하며 따스하게 세상을 적셔주는 거라 생각했다. 곧 싱그럽게 물들 세상이 빗방울 사이로 노릇하게 푸릇하게 보이는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의 봄비는 가습기라도 튼 것처럼 세상을 가리고 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무대를 가리는 실크커튼처럼.
내가 봄을 너무 기대한 모양이다. 출발은 도착이 아닌데 벌써부터 완연한 봄을 그리고 있다. 그런 눈치 없는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려 봄비는 보드랍게 내려앉는다.
뭐가 그렇게나 급했을까? 뭐가 그리도 변했으면 싶었을까? 봄비 안에서 성급한 내 마음을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