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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Jan 05. 2023

편견 없는 편견쟁이

아무리 배려해도 결국 내 생각

나는 사람을 잘 파악하는 편이다. 사람에 대한 눈치는 INFJ의 기본 패시브 스킬이다. 사람을 마주한 순간부터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인간 유형을 매칭 해서 그 사람에게 맞는 기본 베이스를 만든다. 이후 대화를 통해 첫인상과 달라지는 정보들을 수정해서 빠르게 그 사람을 정리한다. 그러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데이터가 하나 더 추가된다.


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수정할 부분이 있다는 걸 감안하고 관찰하다 보니, 사람을 대하는 폭이 넓다. 내 고집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잘 맞춰준다는 뜻이다. 단순히 소심하게 상대의 의견에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는 타입이야'라는 정보를 기반으로 상대방의 뜻에 맞추는 거다. 있어 보이게 '배려'라고 표현하면 좋겠다.


고민 상담도 잘해주는 편이다.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더러 있었다. 고민이 있는 경우 보통 자기 기분에 매몰되어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좀 더 트인 시선과 입장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답을 찾아줬다. 내가 쌓은 인간 데이터가 다른 입장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이 됐다. 대화 후 상대가 후련해하는 모습이 좋았다. 나란 존재가 성향적으로 고민상담의 재능이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그래.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착각이었다고.

오랜만에 한 번씩 만나는 커플이 있다. 날카로운 성격에 공감을 원하는 여자와 공감능력이 떨어지며 부드럽게 대해주길 바라는 남자. 툭하면 싸운다. 둘의 성향이 워낙 반대라서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이다. 나는 그 둘이 서로 행복할 권리가 있으므로 헤어지는 게 더 낫다고 수시로 말했다. 서로 원하는 것도 해줄 수 있는 것도 정 반대인데, 평생 어떻게 견디고 살겠다는 건지...

그런데 그 둘이 반년 후에 결혼을 한단다. 저렇게 서로 안 맞고,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서로에 대한 불만만 토해내는 둘이 결혼한다니. 대체 뭐가 그리도 좋은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그 둘 때문에 내 상담의 근간이 뿌리부터 흔들렸다. 매번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줬는데 , 달라진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더 하나로 묶여 살겠다니...

맞다. 사실 상담도 내 기준이지. 그간 내가 너무 오만하게 대단한 사람인 마냥 떠들어댔구나 하는 생각에 멘탈이 나갔다. 

'너는 이걸 고쳐야해.'

'너는 그걸 참아야해.'

나참. 이만큼 낮짝 두꺼운 말이 어디있단 말인가. 사람마다 모두 성향이 다른데 내 기준의 판단이 감히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수많은 인간 데이터도 사실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닌, 그 사람을 내 멋대로 해석해놓은 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멋대로의 해석을 마치 사전 찾아보듯 했다니. 그래서 이전보다 사람을 대할 때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편견 없이 사람들을 대한다고 생각했는데, 편견이라는 빗속에 우산 없이 서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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