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또 얼마나 하게 될런지...
거참. 세월에 장사 없다.
젊은 아빠 소리를 들은 게 엊그젠데 몇 년 만에 스스로를 늙은 아빠라고 인정하고 있다. 아직 힘이 부칠 나이는 아닌데 점점 주저앉고 드러눕게 된다. 그냥 게을러졌다.
아이들도 적당히 커서 둘이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안 놀아줘서인지는 몰라도 둘이 잘 논다. 잘 놀고 있으니 나는 쉬는 거고. 대충 이런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있다.
문득 내 몸이 굳어간다고 느꼈다. 가만히 있는 게 이렇게 편하다니. 그래. 운동은커녕 스트레칭조차도 안 하고 지낸다. 당연히 몸은 매일 뻐근하고 무겁다. 전에는 조금씩 운동을 했는데 그마저도 안 하니 근육이 짧아지는 기분이다. 애들이 아직 어린데 벌써부터 내 육신은 노화의 길에 들어섰다. 애들 이전에 스스로가 용납되지 않는다.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 '링피트'라는 게임을 구했다. 링피트는 운동을 게임에 접목해서 온몸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으로, 당시 대란으로 품귀현상을 겪어 매일 인터넷 카페와 중고사이트를 감시하고 방방곡곡으로 수소문한 끝에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그때의 열정에 미안해질 만큼 지금은 방치됐지만... 봉인됐다는 게 더 어울릴 정도다.
그때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운동을 했다. 힘들지만 열심히 했다. 아침잠까지 줄여가며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뿌듯함만
아침잠이 적은 녀석 내가 헥헥 대는 소리를 알람처럼 듣고 슬며시 나왔다.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니 아빠 죽을까 봐 지켜보러 오는 효자다.
운동이지만 게임이었기에 괴물들이 나왔다. 온몸을 이용해서 공격을 하고 괴물을 물리쳐서 세상을 구하는 게 게임 컨셉인데, 괴물을 좋아하는 혀기는 매일 구경하러 나왔다. 좀비, 뱀파이어, 해골... 대충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미스테리한 녀석에게 괴물을 물리치는 게임은 당연히 흥미로웠을 거다.
어쨌든 뜻하지 않은 감시자가 생겼다. 아니, 운동 파트너였다. 내가 "어후! 어휴휴!"하고 숨을 토하면 응원하며 소파 쿠션을 들고 함께 자세를 따라 했다. 힘들지도 않으면서 힘든 척 낑낑거리기까지 했다. 아주 오버하는 건 타고났다. 미스터리 그 자체.
덕분에 힘든 운동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았다. 늦잠으로 운동 시간이 애매해 패스할 때는 오늘 운동 안 하냐는 추궁을 받기도 했다. 게임을 사면서 PT신청까지 한 기억은 없는데... 효과는 탁월했다.
중간에 여러 사정으로 열흘정도 쉰 것 빼고는 평일을 꾸준히 해서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게임. 보스를 깨고 끝나는 게 아니라 게임 강도를 조금 높여 첫 마을부터 다시 시작됐다. 스토리는 이어져서 정화된 세상을 다시 도는 이야기.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게 아니면서,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되는 혼란스러운 상황. 딱 그 시점에서 그만뒀었다.
스토리에 대한 내용은 핑계고, 그냥 의욕이 끊어졌다. 운동이 되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던 때에도 스토리의 끝은 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노력했었는데 목표가 사라져서 더 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2회 차 클리어를 목표로 삼아도 되지만... 굳이?
운동효과에 대한 의심이 가장 큰 원인이다. 링피트는 스킬(운동 종류)에 따라 공격력이 다른데 나중에 갈수록 쉬운 동작들의 공격력이 더 강했다. 당연히(?) 그런 스킬들 위주로 사용하게 됐고 점점 더 운동효과는 떨어졌다. 2회 차에서도 사용하는 스킬이 같으니 의욕 상실.
대충 이런 핑계를 만들었다. 사실 정말 운동이 하고 싶었으면 공격력이 낮아도 좀 더 운동이 되는 기술을 썼을 테지.
자연스럽게 운동 종료의 수순을 밟았다. 혀기의 아침잠도 조금씩 늘어갔다. 숨통이 터질 듯 헥헥대도 혀기는 반응하지 않았다. 운동파트너가 사라지니 혼자 하는 의욕은 곤두박질쳤다.
그 결과가 지금의 게으름뱅이를 만들었다. 사실 육체는 쓸만하다. 그냥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기름칠이 안 됐을 뿐이지 아직 내다 버릴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럴 나이도 아니고.
문제는 몸보다 정신이다. '게으름에 익숙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일에 의욕을 싹 씻어버린다. 운동을 하려는 이유도 사실 몸보다 정신개조를 위한 목적이 크다. 꾸준히 무언가를 해낸 다는 건 정신적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니까.
신년이 되고 며칠이 지났지만 작년과 차이가 없다. 시간에 부여된 의미는 상관없이, 그냥 하루 자고 하루 눈 뜨고 하는 일과의 반복으로 지냈다.
딱 지금이 다시 별화를 다짐해야 할 시기 같다. 신년다짐이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으니까.
오늘은 집에 가서 어딘가에 짱 박혀있을 링피트를 찾아봐야겠다.
아들. 한동안 다시 아침 수고를 좀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