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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Mar 02. 2023

집안 기둥의 고민

나는 집안의 기둥이다. 가장이라는 역할에겐 당연한 직무라고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고 집은 지키기  위해 단단히 받치고 있는 기둥. 그런 역할이긴 한데 생각만큼 잘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반쪼가리 완벽주의자로써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지고 있다. 그래서 일이 힘들 때도 꾹 버티고, 나보다는 가족을 우선시한 생활을 한다. 일이 늦으면 늦게 집을 들어가고, 평소보다 빨리 끝나면 빨리 집에 간다. 딴 길로 새는 일이 없다. 기껏해야 퇴근길 중간에 있는 다이소를 한 바퀴 돌면서 시간을 사치하는 정도? 

집에는 아내분이 집안일을 하고 애들을 보면서 힘들고 있을 텐데 나 혼자 여유를 즐기는 일은 죄책감이 든다. 꼭 어딘가에 들려야 한다면 허락을 받고 간다. 촉박하지 않다면 주말에 간다. 그것도 가족 모두 총출동으로. 


주말이라고 개인시간을 갖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시간이기에 개인적으로 낭비하지 않는다. 특별히 어딜 가지 않아도 집에서 함께다. 

예전에는 몇 번  일요일 아침에 집 앞 산을 다닌 적이 있다. 안내표지판에 쓰여있던 평균 등산 시간이 2시간 반이던가? 나는 그곳을 1시간 반 안쪽으로 끝냈다. 올라가는 데 한 시간, 내려오는데 30분. 산신령처럼 오르내린 결과다. 

출발할 땐 가족들이 잠들어있었는데 집에 도착해 보면 이미 기상해 있다. 이게 내가 산행을 서두르는 이유다. 가족들이 잠들어있기 때문에 생기는 빈틈 시간을 이용한 개인 활동이다. 빨리 오라는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다. 그냥 초조함? '깨어있는 시간에는 내가 함께 있어줘야 한다'는 까닥 모를 압박감이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이게 희생이란 생각은 안 한다. 처음에는 당연한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스스로가 쌓아 올린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긴 시간이 지나 한번쯤은 혼자 쉬는 시간도 있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으라고 하면 불편하다. 


"어디 한번 혼자 있어봐. 그렇게나 혼자 있고 싶으면. 한번 해보시라고. 어떻게 되나 두고 보게."

아내분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내 속에서는 이런 메아리 울린다. 독특한 방향으로 뻗어나간 J성향이 스스로의 규율을 강요한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옆에서 놀다 오라고 해도 스스로 가둬놓고 있는 거니까.


누군가는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어머. 가정적이야."라는 소리를 할지 몰라도, 당사자로서는 마냥 좋은 일인가 의심이 든다. 현실은 상상만큼의 로맨틱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야말로 '현실'이지 않은가. 내가 압박을 느끼는 것처럼 가족들도 압박을 느낄지 모를 일이다. 과유불급이다. 든든한 가장이 된답시고 기둥을 100개 세워두면 집안에 편히 몸 누리울 자리도 없을 거다.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이제는 적당히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불필요한 기둥을 하나씩 빼내면서 든든함과 편안함을 모두 느낄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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