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임대차 3 법은 작동하는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by 유쥬얼리

희망과 고문, 그리고 희망고문


때는 2020년 3월.

결국 대출을 더 받아

내 생애 두 번째 전셋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너무나도 멀리 달아나버린 집값만큼

나 또한 어지러운 현실에서 멀리 달아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집값은 싸지만 월급은 많이 주는,

그러면서도 내가 보유한 집의 가격만큼은 많이 오르는 그런 곳 어디 없을까.

(물론 없다.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로도 집값은 하늘 높은지 모르고 치솟았다.

무주택자들의 희망이자

다주택자라는 적폐를 다스려줄 임대차 3 법은

보란 듯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었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

물건과 가격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원리이자

'1+1=2'와 같은 상식.

임대차 3 법은 그렇게 시장의 수요 대비 공급을 대폭 감소시켰다.


2년+2년 계약갱신청구권, 임대료 상한선 5%, 임대차 거래 신고.

이 세 가지 제도를 임대차 3 법이라 칭한다.


이 중 앞의 두 가지 제도로 인해

전세 매물 자체가 시장에서 쏙 들어가 버렸고,

새로이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은 더 비싼 값을 줘야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내 집을 마련하려는 꿈은

보기 좋게, 그리고 처참하 짓밟히고 있었다.


뚫으려는 자, 막으려는 자, 그리고 어부지리


임대차 3 법은 '표면상'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2+2 계약갱신은 주거의 안정성을 2년 더 보장해 주고

계약갱신 시 임대료 상한선을 5%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시세의 상승 대비 보증금을 덜 주고

같은 집에서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 임대인은 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주로 본인 혹은 부모, 자녀가 직접 거주하게 되는 경우다.

혹은 다른 사람에게 매도하고 나서 매도자가 입주하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몇몇 케이스가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


때문에, 갱신을 거절당한 임차인은

등본, 확정일자, 우편물 등을 확인하여

임대인이 거짓으로 계약갱신을 거절한 것은 아닌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임대차 3 법 이후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과 소송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한다.

변호사와 같은 법조계 종사자 분들에게

새로운 블루오션이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나도 일조하게 된다.


분명 가족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제삼자가?


때는 2022년 3월,

우리는 또다시 이사하게 된다.


집값은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많이 올랐고

대출 규제마저 심했다.

최대 한도의 대출을 받아도

도저히 양질의 집을 매매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을 요청했으나

부모님이 들어오신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또다시 새로운 전셋집을 구해야 했다.


지금 보면 집값의 대부분의 전고점이 찍혀있는 2021년 9월,

동네 부동산으로 향했다. 말그대로 살인적이었다.


평수는 줄어드는데 보증금은 5천만 원이 더 올랐다.

추가로 또 전세대출을 받아야 했다.

집은 줄어드는데 대출만 늘어나는 상황.


아마도 계약갱신을 거절한 임대인에게

적개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을 테다.


새로운 집을 구했고 이사를 했다.

(새로운 집의 임대인 또한 어마어마한 인물이었는데, 이는 다음 화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좁은 집으로 이사 가서

나름대로 적응하고 있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아파트 □□동 △△△호 세입자 XXX입니다. 이 전에 사시던 분이시죠?

택배가 잘못 배송된 것 같아서 문자 남겨놓습니다."


택배 오배송을 알려주어 고마운 마음과 함께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네이버 실거래가를 검색해본다.


"분명 부모님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세입자를 받다니!?!? 그것도 보증금을 1억 5천이나 더 올려서!"


확정일자를 확인하러 동사무소에 들렸다.

우리가 이사 나간 지 불과 3주 만에

새로운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았다.

(전 세입자는 퇴거 후에도 확정일자 조회가 가능하다.)


전 임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부모님께서 들어온다고 하셨는데, 혹시 새로운 세입자가 거주 중이진 않으신가요?"

"아, 부모님께서 살다가 사정이 생겨서 새로운 세입자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나간 지 3주밖에 안 지나서

새로운 세입자가 확정일자까지 받았는데

그 사이 부모님께서 거주를 하셨다고?

이 건으로 경기도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에 회부했다.

그리고 한 달 뒤로 심의 날짜가 잡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조위는 도움 되지 않는다.

이들은 화해하도록 회유만 할 뿐 사실관계에 대한 말은 아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인데,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그들이 미웠다.

임대차 3법은 임차인에게 유리한 법이고

나 또한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바로 소송을 준비했다.



법이 반드시 당신을 보호해 줄 거라 생각하지 말라


아는 변호사가 없었다.

검색해서 임대차 사건을 주로 담당한다는 변호사를 찾았다.

회사 근처에 있는 법무법인이었다.


사무실을 방문하여 변호사에게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는 모습에

드디어 나의 구원자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임료 및 성공보수를 합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변호사는 상대방(임대인)에게 소장을 보냈다.


참고로, 한 차례 임대차 소송을 치뤘던 나의 소회를 미리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고용한 변호사라고 무조건 잘해줄 거라 생각하지 말라.

2. 법은 원고의 입장이 아닌 판사의 입장과 사회적 파급을 더 중요하게 본다.

3. 소송은 길고, 지치고, 정신적 소모가 크다.

4. 살아가며 소송에 휘말리지 않는 것 또한 큰 행운이다.


임대인도 반박자료를 보내왔다.

주로 '그 밖의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3주 만에 부모님이 살다가 새로운 세입자를 받았다는) 임대인의 거짓말과

'중대한 사유에 해당될 수 없는 사유'를 파고들어야 했다.


소송은 2022년 10월에 시작

2023년 9월에서야 판결이 내려졌다.

3천만 원 이하 소액사건이다 보니 이 정도였다.

단독사건(3천만 원 이상)이었으면

1년 6개월~2년이 걸릴 각오를 해야한다고 한다.


결론은? 원고 기각. 피고 무죄.

소송비용 원고가 100% 부담.

나의 처참한 패배였다.

판결문을 읽어보니 더욱 허탈했다.

임대인의 거짓말은 인용되지 않았다.

임대인이 주장한 내용이 '그 밖의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만

빼곡히 적혀있었다.

임대인의 거짓말로 인해 시작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나는 거짓말을 했던 상대방의 소송비용(상한선은 있다)까지 물어내야 했다.

내가 믿어왔던 임대차 3 법에 배신감을 느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처참히 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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