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고, 꾸미고, 청소하고...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행동들이다. 자기 비하와 우울로 점철된 날엔 무기력증으로 손 하나 까딱하기 어렵다. 집 안에서 움직일 자신도 없기에, 집 밖을 나가지도 않는다. 바깥에 나간지 꽤 오래 된거같다. 다행인 건 이런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이런 영상을 찾아보는 거겠지.
친구 A는 에너지가 넘친다. 전국팔도를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는다. 몸과 정신의 체력이 쉽게 닳지 않는 친구는 집에만 있던 나를 밖으로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이 날도 나를 집에서 꺼냈다.
에너자이저 친구는 모든 앱테크를 섭렵하고 있었다. 친구는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챌린지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함께 하자고 했다.
'이 세상엔 별의별 어플이 다 있구나. 돈 걸고 하는 습관 어플이라니...'
친구초대를 이용해 가입한 어플에는 각종 습관 만들기가 가득 차 있었다. 매일 도서관 가기, 주 3회 헬스장 가기, 매일 15분 독서하기, 매일 비타민 먹기 등 시간대별로 습관 형성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습관으로 만들면 좋겠다 싶은 게 많아 돈을 투자하기로 했다.
"나도 같이 할래."
친구는 가장 돈을 많이 주는 '이벤트'항목에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챌린지 어플의 '이벤트'는 어플에서 돈을 지원해 100% 달성한 이들에게 상금을 나눠주는 항목이었다. 이번 이벤트는 '억만장자 레이스'였다. 그 습관은 '아침 8시까지 이불 개기'였다.
상세페이지에는
억만장자들만의 공통 습관이 있다. 주로 일찍 하루를 시작해 아침 시간을 주도적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억만장자의 모닝루틴 습관 중 두 번째로 소개된 ‘이불 정리’ 습관을 함께 하자.
는 내용과 함께 이불 개기의 효능이 쓰여있었다.
이불 정리 습관을 들이면 하루를 시작한다는 루틴을 만들 수 있다.
아침부터 작은 성과를 통해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불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이면 잠에서 깨어나기 쉽다.
주변 정리는 성공의 시작이다.
금세 챌린지 시작일이 돌아왔다. 8시가 넘으면 가차 없이 실패란 말에 7시 반 알람에 벌떡 일어났다. 소중한 용돈을 쉽게 버릴 수 없지. 이불을 개고 인증을 하니 1일 차에 사진이 들어갔다. 어렵지 않은걸? 앞으로 92번의 촬영 인증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 열심히 개자.
챌린지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인증을 해야 한다니... 쉽지 않았다. 대낮에 기상하던 습관이 아직 고쳐지지 않아서 매일 아침이 고역이었다. 그래도 돈이 걸렸으니 해야지...
챌린지를 시작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유독 잠을 늦게 잔 날엔 이불을 갠 사진만 찍어 인증하고, 다시 그 이불을 펴 잠을 잔 적도 있었다. 일어나기 귀찮다고 잠깐 잠들었다가 인증마감 1분 전에 인증한 적도 있긴 했지만 아무튼 했지 않은가? 친구와 나 둘 다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인증에 서로를 칭찬하며 남은 61번의 인증을 반드시 해내리라 다짐했다.
어느 주말, 할머니 댁으로 가는 날이었다. 차가 막히는 건 싫다며 새벽 5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뜨이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여가며 새벽 4시, 이불을 갰다. 인증화면을 보는데 많은 사람들이 새벽 4시부터 인증을 했다.
'난 8시 전에 겨우 일어나 인증하는데, 이 사람들은 뭐지?'
새벽 4시에도 매일같이 인증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 인증 사진을 넘기다 보니 부모님이 나갈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휴대폰을 끄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챌린지를 시작 한지 두 달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게 당연해졌다. 인증 후 이불을 다시 펴 잠든 날이 눈에 띄게 적었다. 그 사이 '아침 독서 습관방'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15분 독서를 하고 나면 남아있던 잠이 싹 달아났다. 밤새 하던 과제는 해가 떠있을 때 했다. 밤의 생활보다 낮의 생활이 익숙해졌다.
챌린지를 시작 한지 세 달이 지났다. 92개의 인증이 종료되었다. 참가비 전액 환급은 물론, 예상상금이 천 원이 넘었다. 약 4,000명이 참가해 약 1,200명이 100%달성했다. 전체 인증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으며, 생각보다 적었다. 중간에 있던 여행일정에 실패할 뻔했지만 함께 인증하던 친구와 갔던 여행이라 서로를 일으키며 인증을 성공했다. 92일 동안 나는 최소 8시에는 일어나 이불을 개고 하루를 시작했다.
챌린지가 종료되고 기상 알람을 OFF로 했다. 알람은 껐지만 여전히 8시 전에 눈을 뜨고 이불을 갰다. 몸의 사이클이 8시에 기상하고, 12시에 잠이 들도록 바뀌었다. 더 이상 이불 개기를 인증할 곳은 없었지만 아침 독서를 위해 침대에서 벗어난다. 인증이 끝나면 씻고 도서관에 가야지.
나를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어플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 시작은 최소한의 움직임이었다. 이불을 개는 작은 움직임. 챌린지를 하는 동안 다시 누워 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다. 챌린지 의도에 떳떳하지 못한 나만 아는 실패였기에 그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반복을 하고 습관이 만들어지니 나만 아는 실패도 사라졌다. 작은 움직임은 이불 밖으로, 집 밖으로 이어졌다. 사소하게 시작한 습관형성으로 나의 일상은 더 이상 사소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