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은 죄가 없다

이 과가 저랑 안 맞는데요

by 우지


나는 전공이 싫다.


나의 전공은 회계학과 세무학이 합쳐져 있다. 회계는 자산, 부채, 자본, 수익, 비용을 이용해 장부를 작성하고 관리를 위해 복잡한 계산을 한다. 특히 회사의 이익을 위해,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선 꼼꼼함이 필요하다. 또 연도마다 바뀌는 세법을 적용하여 세금징수액을 구하는 등 계산을 해야 한다. 누구보다 꼼꼼해야 할 장부 작성과 계산은 덜렁대는 나와 상극이었다.


어느 날, 듣게 된 북토크에서 작가님도 가고 싶던 학과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저는 제 전공이 싫었어요.
그렇지만 전공이 무슨 죄겠어요.
제가 가고 싶었던 학과와
다른 곳에 가서 싫은 거지.


그랬다. 생각해 보니 전공은 아무런 죄가 없었다.

단지 공부하고 싶었던 학과가 아니었을 뿐이다.



만화 <여학교의 별> 패러디




대입 당시, 수시 원서를 넣었다. 6개까지 넣을 수 있기에 학과를 먼저 정했다. 당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가고 싶던 곳은 미디어 디자인 혹은 디자인과 관련 학과였다. 실기는 자신이 없었기에 면접과 점수만으로 갈 수 있는 곳을 골랐다.


전공을 정해 네 곳에 원서를 넣을 거라고 말하니, 엄마는 한 가지 권유를 했다. 한 가지 서류는 다른 전공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회계를 잠시 배웠을 때 꽤 좋은 점수를 받았던 터라 그 과는 어떠냐고. 이미 원하는 곳에 원서를 넣었기에 마음이 너그러웠고, 흔쾌히 집 근처 학교를 찾았고 원서를 적어냈다.


3개월 후,

대학 몇 군데에 합격했다. 가장 마음에 들던 곳은 면접 분위기가 좋았던 곳이었다. 그 교수님들과 함께라면 대학생활이 즐거울 것 같았다. 그때 다른 전공을 넣었던 학교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엄마는 정말로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즐겁지 못한 고민에 빠졌다.


가깝고 취업하기 좋은 전공이냐,
아니면 배워보고 싶은 전공이냐...


합격 등록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곳저곳에 이야기했다. 당연하게도 취업하기 좋은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다. 긴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래, 엄마가 대학등록금도 내주신다는데 그냥 취업 잘 되는 학과에 가자.‘




그렇게 고민하고 들어간 학교이건만,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좋은 동기를 만났고, 좋은 교수님들이 계셨지만 전공에 맞지 않았다.


사람은 공부할 때 두 종류로 나뉜다고 하지 않는가.

1. 무조건 외우고 본다.

2. 이해될 때까지 파고든다.

확실한 정답이 있는 학문에는 1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한다. 일단 외워야 다른 곳에 응용이 가능하다고. 불행히도 나는 2에 속했다. 그래서 정답이 확실했던 전공이 어려웠다.


또 과 특성상 혼자서 공부하고 시험 보거나, 과제 역시 혼자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다. 온전히 나의 책임으로 이루어지기에 혼자서 하는 건 편했지만, 좋은 성적을 받아도 보람 있지 않았다.

특히 조별과제가 없어 아쉬웠다. 1학년 1학기엔 몰랐으나, 2학기 교양수업에서 처음 경험한 조별과제는 나를 교양수업 중독으로 이끌었다. 수업을 선택할 때에도 재미있지만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수업 혹은 재미는 없지만 점수를 잘 주는 수업 중 언제나 재미있는 수업을 선택했다. 친구들은 낭만 있는 대학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최소학점의 전공만을 채우고 교양수업으로, 외국어로, 으로 도망쳤다.




그땐 한 번 고른 선택은 무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아니었다. 왜 그 당시엔 또 다른 길로 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였을까?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채 전공은 그냥 전공으로만 남았다. 결국 지금에 와서야 원하던 창작을 하게 되었다. 나는 전공을 미워했지만, 전공은 죄가 없었다. 나에 대해서 잘 몰랐던, 무른 마음으로 선택한 것이 실패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도망쳤기에 발견한 길이 있었다. 그곳에는 나의 미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나의 전공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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