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와 손절하기
친구 A를 만나고 나면 힘이 빠졌다. 10년 넘게 알아온 A라 마냥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만나고 나면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 일주일간 나의 말투는 거칠어지고, 부정적인 말만 하는 투덜이가 된다.
여느 때처럼 A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나쁜 날엔 일기장에 손이 가는데 이날도 역시 일기를 썼다. 일기를 읽어보니 전부 남 탓이다.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전에 쓴 일기를 봤다. 어떤 날은 긍정적으로, 어떤 날은 부정적으로 작성한 일기에는 각자 공통점이 있었다. A를 만나고, 3일 동안 남 탓으로, 끝엔 자기 비하로 이어지는 일기를 쓴다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A를 만나고 나면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는구나.
그 결과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찍네.
회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구나.
그동안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흐린 눈을 했다. 모임에 엮인 사람이 많기에 아닌 척, 못 본 척하면 편했다. 그러나 일기를 보고 받은 충격은 꽤나 컸다.
A의 입버릇이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듣는 이 말로 '내가 이상한가? 틀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점차 커졌고, 어느새 나는 나를 검열하고 있었다.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A는 여린 사람이라 지적하면 분명 속상해하고 본인을 검열하겠지.'라는 생각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대신 약간의 언질을 주었지만 알아채지 못한 듯하다.) 이어진 부정적인 일상 속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불평불만으로 의미 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건가?
남들 눈에 투덜이로 남을 것인가?
굳이 이 친구와 만남으로써 나를 깎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오랜 시간 같이 보낸 친구와 멀어지겠다는 생각이 맞는 걸까?’라는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다.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며 책, 유튜브 등을 찾아봤다. 그곳에서 이러한 내용의 비슷한 시를 발견했다.
모든 사람이 인생이라는 길에서
각자의 버스를 타고 떠난다.
어떤 사람과 멀어지는 것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사람이
내려야 할 정류장에 내린 것뿐이다.
그러나 관계를 한 번에 정리하는 것은 어려웠다. A의 버스에서 내리기 전, 진지한 대화를 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친구의 지난날을 알고 있었다. 그는 삐걱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언제나 무자비하게 부딪혔고 서로 박살 났다.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오만한 생각일 수 있지 않을까? A와 나를 잘 아는 B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A와 관계에 대해 얘기해 보는 게 나을까?”
“음... 다른 사람 같으면 말해보라고 할 텐데 A는... 차라리 조용히 멀어지는 게 낫지 않겠어?”
긴 고민 끝에 서로가 상처받지 않게, 점차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도록 관계를 정리해 보자고 생각했다. 인간관계 고민 유튜브를 보다 5년 동안 인연을 이어왔으면, 5년 동안 멀어지면 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멀어지기로 했다.
연락이 오면 즐거운 마음으로 답장한다. 그리고 만나자는 말이 나오면 (나 혼자만의) 일정이 있다며 다음으로 미룬다. 그리고 겹지인으로 함께 만나는 날,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아주 잠시 대화한다. 1:1 만남을 순차적으로 줄이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의 연락이 없다. 건너 건너 지인에게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듣는다.
지금 돌이켜보니 A는 나르시시스트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건설적인 비판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했고, 자신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언제나 타인이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이 더 편하다는 그의 말이 이제야 떠오르는 건 왜일까.
A의 입장은 알 수없다. 그에겐 내가 에너지 뱀파이어였을지도 모른다. 그와의 관계는 실패였다. 나는 그의 버스에서 내렸지만, 언젠가 옆 차선에서 버스를 타고 있는 A를 마주치면 잠시 인사는 나눌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 A는 그의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가기를, 긍정적이고 평안한 일상을 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