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읽을 때가 가장 편했다
도서관 문화교실 수업에서 시작된 글쓰기 동아리.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아리 시작으로 2024년에 어떤 목표를 가질까 생각했다. 마침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동아리 지원사업에 합격했다. 지원사업은 돈을 지원해 주는 대신 공연이나 전시를 해야 했고, 우리 동아리는 책을 만들어 전시를 하기로 했다.
문화교실 수업을 진행했던 작가님도 함께 동아리 활동을 했다. 많은 책을 출간한 작가님은 '단순히 글 쓰는 것과 글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것은 다르다'며 이참에 1년에 프로젝트로 공저로 책을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사실 이전에 도서관 수업에서도 서평을 모아 작품집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기에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반색을 표하는 회원도 있었다.
내 글이 종이낭비가 되지는 않을까요?
그랬다. 나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금방 의기소침해졌다. 그러자 작가님은 이렇게 말했다.
마감기한까지 완성되지 못하거나,
완성도가 낮은 글은 뺄 겁니다.
일단 열심히 써봅시다.
마음의 부담이 줄었다. 지금까지 내 글을 피드백해 주시고 의견을 나눌 동아리 회원이 있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자 글을 써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오프라인과 온라인회의를 통해 매달 두 번씩 합평했다. 사실 책 만들기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글쓰기부터 난관이었다. 짧은 에세이 3개를 6개월 넘게 고쳤다. 겨우 연말까지 원고를 완성했지만, 나에게는 임무가 아직 남아있었다.
나는 몰랐다. 도서관에서 서평 모음집을 만들며 알게 되었다. 강사였던 작가님은 직접 한글파일에 원고를 넣고 만들었다. 시간이 많았던 나는 작가님을 도와 문제점을 해결하고, 기본적인 내지 디자인을 만들어갔다. 최종적으로 작가님이 책 양쪽을 맞추며 직접 편집을 마쳤다.
이때의 수고로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이번엔 서평을 모은 것이 아니라 시, 에세이, 소설을 모았기에 분량도 많고 보기 좋은 편집이 필요했다. 책 편집 방법을 찾다 보니 마지막에 다다르는 건 편집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이었다.
인디자인이란?
책을 만들 때 사용하는 어도비 프로그램으로, 출판물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
좀 더 마음에 드는, 편한 편집을 위해 미디어센터에 인디자인을 배우러 갔다. 어도비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라 같은 종류의 프로그램을 사용해 봤기에 툴은 익숙했다. 그러나 툴을 다루는 것과 편집은 달랐다.
글쓰기만 어려운 줄 알았더니, 편집도 어렵다. 독자들에게 잘 읽히게, 눈에 거슬리지 않게 편집하는 것은 단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했지만 이미 편집 프로그램을 배우고 이야기했을 때였다. 인디자인 프로그램 다루기 세 달 과정을 지났다.
11월이 되자 모든 동아리 회원 글이 모였다. 이제 편집을 시작해야 한다. 인디자인을 배울 땐 '가ㅇㅇ/나ㅇㅇ/다ㅇㅇ...'오름차순 이름으로 이어지는 페이지 형태를 만들어두었는데, 책 회의 중 더 나은 편집 방향의 의견이 나왔다. 이름을 가리고 에세이 따로, 소설 따로 모으자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전체를 갈아엎어야 했다. 이름을 가리는 게 재밌게 느껴지면서도 편집 전체를 갈아엎을 생각에 두려웠다. 수업에서 배운 대로 새 페이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수업 들을 때는 화면의 요소를 내 마음대로 배치했다. (많이 지적받았다) 막상 실전으로 오니 강박적으로 안내선에 맞추고 있었다. 3개월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
편집을 하며 글을 한 번 더 수정하고, 모르는 부분은 강의를 찾고, 여백을 조정했다. 책의 모든 요소엔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편집은 약 두 달간 진행됐다. 이제는 마감하고 인쇄소에 보내기로 약속한 날짜가 왔다. 최종확인하는데 군데군데 수정요청이 왔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오탈자를 수정했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표지 이름 높이를 수정했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책 속 소제목을 수정했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오탈자를 수정했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앞표지 디자인을 수정했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오탈자를 수정했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뒤표지 소제목을 길이를
수정했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뒤표지 소제목 길이를
다르게 수정했다.
수정사항 요청이 왔다. 뒤표지 소제목 길이를
또 다르게 수정했다.
내지 수정은 할 때마다 뒤 페이지 전체에 영향이 끼치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트북 배경화면은 수정본 파일로 가득 찼다. 그때 동아리 회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인쇄소에서 파일을 기다린다고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남은 수정 요청을 한 시간 만에 처리하고 인쇄소에 파일을 보냈다. 다음 날,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다. 페이지를 잘못 압축하여 보냈다기에 바로 수정해서 전송했다.
동아리 회장님께서 받아온 책을 만났다. 애증의 책이다. 막상 실물을 보니 아쉬운 점이 보였다.
웹으로 볼 때와 다른 느낌의 표지
답답해 보이는 내부
마음에 안 드는 서체 등...
하지만 이미 출력되었다. 동아리 회원 모두 결과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즐거웠다. 드디어 프로젝트가 끝나... 지 않았다.
수정할 부분을 미리체크하시고 한 번에 알려주셨다. 수정사항 요청에 익숙해져 전보다 빠르게 수정할 수 있었고, 한번 경험이 있으니 편집을 할 수 있는 만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어떻게 해야 가독성이 좋아질까?
조금이라도 잘 읽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장에 넣고 싶은 표지는 무엇일까?
어떻게 손을 대야 더 완성도 있을까?
많은 고민과 회의, 편집 끝에 책이 완성되었다. 진짜 편집 끝이라니. 온라인 서점에 올라간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부터 출간을 목표로 책을 제작했으면 금방 포기하거나 완성도가 아쉬웠을 것 같다. 동아리 지원사업으로 직접 출력해 본 덕분에 더 완성도 있는 편집이 가능했다. 한 번의 실패를 반면교사할 수 있었다.
내가 편집하는 책에서 벗어나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책은 더 이상 단순히 책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표지 안 요소부터 책 등 디자인, 책날개와 간지, 서지, 본문 디자인, 페이지수, 머리말... 뭐 하나 스쳐 지나갈 수 없었다. 모든 책은 쉽게 나온 게 아니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어서 몰랐던 것이다. 글쓰기만큼 어려웠던 건 책 편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