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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22. 2016

[소설] 내려놓음 94 일어설 준비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94 일어설 준비Ⅲ




 그녀의 소설을 찾아보았다. 앞으로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도움도 될 것 같고, 심심한 일상에 칠 만한 양념으로 그만한 게 없어보였다. 잔잔했던 일상에 던 져진 조약돌. 그 돌이 만든 일렁거림은 내 마음을 적시기에 충분했고, 6~7시간 밖에 안 되는 하루의 대부분을 소설 찾는데 투자하도록 만들었다. 소득은 없었다. 알아낸 것이라고는 그녀에게 상을 준 협회는 망했고, 전국의 도서관이나 책 거래 사이트를 모조리 뒤져보아도 그 작품을 담은 잡지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 인터넷의 바다에 어쩜 이토록 완벽하게 침몰할 수 있는지 한숨만 나왔다. 이틀 만에 그 협회의 후신을 자처하는 단체를 찾아 그 소설이 담긴 잡지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찾아보겠다며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아간 이후로 연락 한 번 주지 않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느끼며 친한 후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서로 공유한 부끄러운 기억이 한 가득이라 이것 하나 추가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없는 사이인 후배라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의 검색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도서관법 20조에 의거하여 모든 출판물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바로 그 잡지를 찾아내어 우편복사신청까지 대신 해주었다.


 인터넷에서 상품을 주문하면 빠르면 당일 늦어도 이틀 안에는 배달되는 세상에, 도서관의 일처리는 너무나 더뎌 우편물을 받은 건 그리로 부터 일주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20장 남짓한 분량의 소설은 소년과 소녀의 두 가지 시선으로 진행되었다. 어마어마했다. 개연성이나 진행 면에서 드러나는 경험 부족이 누가 대필하지 않았음을 알려주었지만 중학교 2학년이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스토리가 막장이었다. 실소를 금하지 못하고 읽으면서 생각했다.


 ‘요즘 나오는 드라마 중에 아무거나 하나 정해서 중학교 2학년한테 A4용지 20장 이내로 요약하라고 숙제내주면 대충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진지하게 글을 쓰기 전에 연습 한 번 해보는 차원에서 각색에 도전해보았다. 분량은 적었지만 솜씨 좋은 작가라면 짧게는 4부작, 길게는 16부작으로도 제작할만한 플롯이라 살짝 탐도 났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 적당해보였다. 소년과 소녀의 시점에서 진행시키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그렇게 3일간 씨름하다가 포기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숨을 불어넣기에는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반 정도 쓰고 다시 읽었을 때 공기가 되어버린 조연 몇몇을 발견했고, 그 순간 미련 없이 접었다.


 ‘어차피 다 고쳐놓아도 어디 출품하기도 애매했어. 원작자 이름에 걔 이름 쓸 수도 없잖아? 이번 시행착오로 얻은 것도 있으니까 이만큼 했으면 됐어.’




95 일어설 준비Ⅳ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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