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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22. 2016

[소설] 내려놓음 93 일어설 준비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93 일어설 준비Ⅱ




 연락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120kg이 넘던 거구가 70kg대 까지 떨어지는 과정을 몸소 지켜보았던 과외학생 가람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애가 중2일 때부터 고1까지 과외를 했었는데, 앞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 잠시 생각했던, 환자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의료인이 간호사라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던 학생이 바로 가람이다.



동완 : 학생간호사~!

가람 : 허허허 이제 학생 아니에요. 면허도 나왔어요.

동완 : 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취직했어? 부디 C대병원은 아니길 빈다.

가람 : 아니에요. 왜요? C대병원에 무슨 일 있어요?

동완 : 쌤이 얼마 전까지 약 5주간 NS병동에서 살았거든.

가람 : 엥 왜요? 저 NSICU 실습했었는데.

NSICU : 신경외과 집중치료실(중환자실)


동완 : 쌤 뇌종양. 악성이야. 11월 초까지는 항암 치료.

가람 : 헐, 괜찮아요??

동완 : 괜찮아. NSICU 시절 학생간호사가 쌤 죽 떠먹여주었는데, 니 생각나더라. 혹시 너면 어쩌냐 하고 걱정했지.

가람 : 진짜요?

동완 : 병원에 입원해서 지켜보니까 학생 간호사도 계속 학교가 바뀌더라? 그래서 바뀔 때마다 우선 니가 다니는 학교인지 아닌 지부터 확인했어.

가람 : 아쉽게도 전 이미 졸업했지요.

동완 : 다행이지. 그 상태로 너 봤으면 나 쪽팔려서...

가람 : 그랬으면 쌤 히스토리 다 봤겠죠?

동완 : 현실이 아니어서 겁나 다행이다. 취직은 어디에 했어?

가람 : 저 웨이팅 중이에요. 부산으로 가요.드디어 집 떠남.

동완 : 전부터 맨날 집 떠나고 싶다더니 잘 되었다.


가람 : 그나저나 저 ICU 실습 처음 나가봐서 면회시간보고 울었는 적도 있어요. 처음에 실습 나갈 때는 중환자실 가기 싫다고 난리치다가 갔다 오고 나서부터 지원부서 바로 ICU 썼어요.

동완 : 중환자실 시끄럽고 바쁘던데.

가람 : 바쁘긴 하던데, 이미 되돌릴 수는 없어요. 게다가 저는 외상중환자실로 해놓았는데 거기에는 자살시도해서 오는 사람도 많다네요.

동완 : 옛날에 니가 이야기하던 의료현장의 최전방에서 이제 일하겠네. 내가 ICU에 있을 때, 시간마다 바이탈 체크하러 오는 간호사 보면 엄청 반갑더라. ‘말상대 왔구나~’ 하고. 의식 있는 환자 보게 되면 이야기 많이 해줘. 엄청 위안되더라.

가람 : 네, 꼭 그렇게 할게요.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이후로 종종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야구선수, 프로필 사진 구경하다가 실수로 통화버튼을 눌러버려 덜컥 연결되어버린 전여친까지. 그 뒤로도 많은 사람에게 연락했다. 사람이 심심하면 미쳐간다는 세간의 말이 틀림이 아님을 제대로 증명했다.


 실수로 전화연결이 된 전 여자친구는, 독특하게도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인물 정보에 뜨는 사람이었다. 나처럼 이름이 흔해서 동명이인의 유명인이 나오는 게 아니라 실제 본인이 나왔다. 교외의 고등학교의 직원으로 근무했던 그녀는 거기서만큼은 소설가였다. 중2 때 그녀가 쓴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한 흔적인데, 사귀는 내내 한 번도 그 작품을 보여주지 않아 늘 궁금해 하곤 했었다.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는지, 연결음 한 번이 채 다 울리기 전에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황급히 종료버튼을 눌렀지만 이미 늦은 상태. 당황해서 말을 어버버버하는 나에게 그녀는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실수였음을 고백하며 뻘줌한 전화를 마무리했다.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휘감았다.


 ‘벌써 결혼해? 아, 난 결혼할 수 있을까?’

 ‘머하고 있어? 너도 글 써야지. 그러려고 기록해둔 거 있잖아.’

 ‘그 소설이 갑자기 생각나네. 보고 싶다.’




94 일어설 준비Ⅲ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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