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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23. 2016

[소설] 내려놓음 96 일어설 준비Ⅴ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96 일어설 준비Ⅴ




 글을 쓰기 위해 그동안 했던 기록을 찾아 타임라인을 정리했다.


수술하러 가기 전, 남겼던 예비용 유서 「징징록」

수술 후, 시시때때로 떠오른 생각을 적은 「병상일기」

힘들 때마다 여러 사람 붙잡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내역


 하나하나 읽어가며 지난 시간을 그려나갔다. 지난 2년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2개월. 일어났던 일 만큼이나 변화도 급격해서 마치 동영상을 초고속 재생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동안 나는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급증에서도 벗어나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겼다.


 실제로 수술 받고 종양 판정받는 등 한바탕 폭풍이 지난 이후부터, TV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밤새 몽롱한 잠에서 깨어나 병원 갈 준비를 하다가도 비죽비죽 실없는 웃음을 흘리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는 칠정(七情),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한의학적으로는 노희사비공우경(怒喜思悲恐憂驚)을 온전히 느끼면서도 미소라는 양념을 곧잘 쳤다. 나를, 살아있는 나를 사랑하기에 지을 수 있는 미소. 가슴과 머리는 얼굴의 미소로써 염화미소(拈華微笑)를 종종 나누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대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느끼고 180° 변하여,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보람 있는 일이나 봉사하는 일에 몸 바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 이것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수술 전에는 살까말까 고민하던 놈이 머하고 있냐?”


 이 말 한마디는 주문처럼 내 마음과 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곤 했다.


 다만 임사(臨死)까지 안 갔던 모양인지, 아니면 욕망이 많았던 탓인지 후자는 해당되지 않았다. 보람 있고 봉사하는 일보다는 아직까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꿈이 더 소중했다. ‘내려놓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살짝 시늉만 냈을 뿐.

 존재의 소멸 위기 앞에서도 ICU에서 기저귀에 똥 싸기 싫어서 머리를 굴렸고,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한의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싶어 병실에서 쓸데없이 정자세로 앉아 공부하는 시늉을 했고, 아침에 혹시 발기된 모습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며 잠들었다. 그러면서도 수술 후유증으로 남성성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걱정했고, 어차피 소변통에 오줌을 누었어야함에도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는 배뇨가 불가능했던, 애초에 난 그런 세속적인 놈이었다. 그래도 이번 사건을 통해 느끼고 받은 사랑과 관심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고 갚아가며 살아가리라.



 타임라인 작업을 마무리할 때쯤 I/O 노트를 발견했다. 이 노트 때문에 어머니와 많이 싸웠었다. 병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대소변은 언제 해결했는지 언제 잠들었고 자다가 몇 번 깼는지, 병원 매점에서 구한 초등학생용 공책에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조리 기록했다. 물론 간호사가 하루에 한두 번씩 찾아와 Input(섭취량)과 Output(배설량)을 체크했기에 필요하기도 했지만 병세가 좋아져 그럴 필요가 없었을 때도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잊고 싶을 부끄러운 모습들조차 공책에 낱낱이 적힐 때면, 나는 점점 초등학생으로 퇴행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런 열성적인 어머니와는 달리, 나와 아버지는 그 임무를 귀찮아했다.

 ‘묻지도 않는 것을 굳이 왜 적어야 하나?’


 실수로 기록을 소홀히 한 날에는 어머니는 여지없이 울상 지으셨고, 아버지와 나는 퇴근해서 힘들게 돌아온 어머니의 마음을 위해 별 수 없이 기억을 더듬어 잃어버린 한나절의 기록을 복원해야 했다. 가끔씩 ‘이맘때쯤이면 기록 안 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까?’ 싶어 폰에만 메모해두고 빈 공책을 내밀어 보기도 했지만 어림없는 짓. 그렇게 퇴원할 때까지 어머니와 나의 밀당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었다.


 사실 퇴원하고 나서도 어머니는 기록에 남기기를 원하셨지만, 퇴원이라는 든든한 아군을 얻은 나는 기고만장했고 그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그 날 어머니께 이야기했다.


엄마, 이제 물어보는 사람도 없자나. 그런데 왜 자꾸 적으래. 병원에 있을 때도 이쁜 간호사들이 와가지고 오줌 몇 번 누었냐 대변은 언제 보았냐 물으면 대답할 때마다 얼마나 쪽팔렸는지 아나? 근데 그걸 또 하라고? 엄마는 모르는가본데 굉장히 자존심 상해. 똥, 오줌 이런 거 떠올리는 거 자체가 싫고 짜증나.


동완아, 귀찮겠지만 이게 다 재산이다. 혹시 알아? 나중에 다 낫고 나서 수기 같은 거 쓰게 될지? 그리고 그런 거 쓰지 않더라도 이번에 아픈 거 두고두고 써먹을 일 많을 텐데, 그 때가서 ‘내가 머 했었나...’ 하고 기억해보려면 기록 하나 있는 게 낫잖아. 그래도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고 하니 이제 그만하자.



 그리고 실제로 어머니 말씀대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내 몸에 들어가고 나간 것들의 기록들은 병원에서의 하루하루를 떠올리는데 있어 촉매제로 손색이 없었다.




97 일어설 준비Ⅵ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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