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그 여자네 집』-《그 여자네 집》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생긴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경북 청송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부산으로 터전을 옮기셨고 아버지는 그곳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의 고향은 경남 합천이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전북 정읍으로 터전을 옮기셨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자랐다.
그 덕에 명절마다 방문하는
친가는 부산의 산중턱에 있었고,
외가는 정읍시 읍내의 한복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을 뒤에는 산이 하나 있고
앞으로는 너른 들판이 있다던
시골로서의 고향은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명절에 시골에 가야한다며 투덜거리던 친구들이 참 부럽기도 했고
만약 두 분 중 한 분만이라도 사시던 그 곳에서 사셨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난 문학소년 이었다.
자기 전에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책 보기를 곧잘 했다.
그냥저냥 책장을 넘기다가도 열심히 읽는 장면이 있다면
그건 자연과 함께 하는 시골의 풍경이었다.
신비로웠고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본 시골은
성묘하러 선산에 방문할 때
지나갔던 마을의 모습,
그게 다였으니까.
나머지는 모두 상상의 몫이었다.
그런 나에게 고령은
시골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는 곳이었다.
마음의 고향, 고령
난 자주 고령을 그리워했다.
향수병(鄕愁病)처럼.
《그 여자네 집》을 읽고 든 충동을 참을 수 없어 옷을 들쳐 입고 차키를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
들을 적시는 개울물이 도처에 그물망처럼 퍼져있는 물이 흔한 고장이었지만 다리를 통해 건너야 하는 긴내골의 시냇물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물은 깊지 않았지만 골이 깊어서 길에서 수면까지 비스듬히 가파른 둔덕에는 잗다란 들꽃들이 봄 여름 가을 내 쉼없이 피었다 지곤 했고, 흰 자갈과 잔모래와 꽃 그림자 사이를 무리지어 유영하는 물고기들과 장난치듯 부서지는 잔물결은 수정처럼 투명했다. 그 시냇물에는 흙다리가 놓여 있었다.
(197p)
대가야 테마파크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엔 자운영과 오랑캐꼿이 들판과 둔덕을 뒤덮었다. 자운영은 고루 질펀하게 피고, 오랑캐꽃은 소복소복 무리를 지어가며 다문다문 피었다. 살구가 흙에 스며 거름이 될 무렵엔 분분히 지는 찔레꽃이 외진 길을 달밤처럼 숨가쁘고 그윽하게 만들었다.
(201p)
대가야 테마파크 및 신촌유원지
만득이는 아마 개울물이 하얗게 하얗게 실어나르는 살구꽃을 연서처럼 울렁거리며 바라보았을 것이다.(202p)
대가야 테마파크
내가 곱단이를 그리워했다면 그건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젊은 날에 대한 아련한 향수였겠지요.(213p)
관사에서 고령군 보건소 가는 길에서 보이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