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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3. 2016

[소설] 내려놓음 68 카운트 다운Ⅳ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8 카운트 다운Ⅳ




 중학교 2학년 때 다닌 학원의 사회선생님은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시는 독특한 분이었다. 도시 변두리 조그마한 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기에 분에 넘칠만한 학력의 소유자였던 그의 강의는 재미있으면서도 짐짓 깊이도 있어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시간이 흘러 대입 논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찾아간 논술학원의 원장님은 그 학원의 원장님이었고,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들을 수 있었다.


 원장님이 아끼는 동생이었던 그분은 사상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사법고시를 번번이 낙방한 비운의 수재였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술과 담배, 무절제한 생활로 저항했고 곧 그의 몸은 급격히 망가졌다. 민주화 운동이 성공하면서 장애물이 사라졌지만 이미 그는 병원에서 시한부판정 받은 뒤였다. 그는 살기 위해 술과 담배를 모두 끊고 생활패턴을 최대한 자연식으로 바꾸었고, 기적적인 삶을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잠시 친한 형의 학원에서 소일거리 삼아 사회를 가르쳤는데 내가 그분을 뵌 것은 바로 그 시기였다. 은사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원장님께 이야기했지만 그분은 이미 세상에 없으셨다.


 은사님은 내가 학원을 옮기던 중3 때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동완아, 너는 어느 집단이든 적응하면 그 위치로 올라설 거다. 소속집단에 맞추어서 그에 맞는 노력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되도록 높은 집단에 속해라. 용의 꼬리가 되어도 상관없어. 시간만 지나면 꼬리를 벗어나 더 위를 바라보고 있을 거다. 흔히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가면 등수가 2배, 3배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너는 그러지 않을 거야. 지금 이대로 하면 한의사 하고 싶다는 꿈 이룰 수 있어. 그러니까 괜히 겁먹고 꿈을 낮추거나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정확한 말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체로 이런 뉘앙스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 성적은 예체능 비중이 줄어든 틈을 타 오히려 더 올라서 덕분에 목표했던 한의대에 입학했고 서울대 합격증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리는 호기를 부릴 수도 있었다. 한의대 입학해서도 차차 적응되자 본과 때부터는 성적 순위권을 유지하여 장학금을 쏠쏠히 타먹으며 다녔다. 12학기 중에 8학기를 탔건만 다 합쳐도 1000만원도 되지 않아 큰 도움은 안 되었지만, 은사님의 말을 증명하는 것 같아 매우 기뻤다.


 몸으로 하는 것은 무얼 하든 꼬리였지만 머리로 하는 것만큼은 그분의 말씀이 항상 옳았다. 이번 병마 앞에서도 통할 것이다.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Mental’이고 이것은 머리로 하는 거다. 심지어 병소도 ‘뇌’가 아닌가? 상위 5% 안에 들 수 있다. 잘 낫고 시간 잘 보내고 능력도 키우고 다 잘 할 수 있으리라.



 예과 1학년 때는 소심한 방황을 한 적이 있었다. 100명이 넘는 입학 동기 중에는 재수나 삼수를 하고 온 사람, 다른 학교 다니다 온 사람, 직장 다니다 온 사람, 자퇴해본 사람, 심지어 고등학생 때 까페 알바하며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현역으로 온 사람 등등 많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 사람들의 경험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와 식견들은 자못 깊었고 너무나 부러웠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으면 항상 넓은 길로만 다녔던 나에게 이렇다 할 경험과 거기에서 나오는 식견 따위가 나올 리가 만무했다. 뚱뚱한 몸 때문에 받았던 따돌림 정도? 그건 부끄러운 기억일 뿐 그 안에서 얻은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다.


 결과만 같다면 과정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것이 더 좋은 법이다. 한동안 깡통같이 비어버린 학창 시절을 원망하며 술을 진탕마시고 숙취에서 미처 깨지 못한 채 강의시간에 기어들어가곤 했다. 항상 수많은 내용을 학생의 머리에 집어넣기 위해 속사포처럼 이야기하시던 교수님은 그날따라 옆길로 잠시 샜다.


그 위치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는 과연 나만큼 할 수 있었는가?


 이것이 자신의 과거와 선택들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며 열변을 토하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갓 잡아 올린 장어처럼 그 말은 머릿속에서 3일 밤낮을 팔딱거렸다. 그리고 결론 내렸다.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항상 넓은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주변 상황들, 그 안에서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말이다.


 교수님의 그 말 한마디는 자존감이 낮았던 나에게 반전의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유효하다. 갑자기 위중한 병에 걸렸을 때 나만큼 잘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평범한 상황에서는 나보다 잘 할 사람이 많을지 몰라도 위기에서만큼은 내가 1등이다. 지금껏 스스로 만든 벼랑에서 살아왔던 ‘나’ 아닌가? 이 정도쯤은 문제없다.




69 카운트 다운Ⅴ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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