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남 Dec 12. 2016

[소설] 내려놓음 67 카운트 다운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7 카운트 다운Ⅲ




 오후에는 연주 형이 찾아왔다. 훈련소 동기로 처음만난 형은 작년 내내 추나학회 아카데미를 같이 들으면서 정말 많이 친하게 지냈다. 형은 미리 부탁해둔 침과 함께 요즘 유행 하는 드라마 몇 편도 USB에 담아왔다. 밤새 있었던 일과 치료 목적을 설명하고 어디에 자침하면 좋을지 논의했다. 심인성(心因性)인 것을 염두에 두어 침을 놓을지 증상에 초점을 맞추어 침을 놓을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본치(本治)보다는 표치(標治)에 무게를 두어 소화기를 다스리는 침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본치(本治) :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먼저 치료하는 것

표치(標治) : 발현된 병의 증상을 먼저 치료하는 것



 떠나는 형을 배웅하고 돌아와 내 몸에 침을 놓아보았다. 병변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을 때 남자는 왼쪽 경혈, 여자는 오른쪽 경혈을 주로 택한다. 소화기는 몸의 중심에 있으므로 뚜렷한 방향성이 없다. 따라서 왼 다리, 왼 손에 침을 놓아야 하고 자연히 오른손을 이용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왼손잡이라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스스로 내 몸에 통증을 주려고 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약간 망설이기만 해도 침은 피부를 뚫기를 거부했다. 표피만 간신히 통과한 침은 서있지 못하고 이내 누워버리기에 아프기만 할 뿐 별 소용없는 일. 왼 손바닥을 부여잡고 고통을 달래며 내가 왼손잡이임을 잠시 원망했다.


 ‘아니다. 왼손잡이인 게 천만다행이지. 병소가 좌뇌인데 오른손잡이였으면 더 큰일이지. 이 기회에 오른손으로 자침 연습도 해보고 좋지. 머뭇거리니까 진짜 아프네. 역시 한방에 뚫어버려야 해.’


 저녁 먹을 때까지도 입원하는 사람이 없어 오늘도 편하게 잠들 수 있겠다고 여겼는데 8시 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이비인후과 환자가 입원했다. 내일 편도 절제 수술을 하고 금방 퇴원한다고 하였다. 보호자는 신혼으로 보이는 아내. 알콩달콩 행복해보였다.


 첫 번째는 툭하면 화를 벌컥벌컥 내는 투덜이 아저씨.

두 번째는 답답하다며 외출을 나가다 쓰러진 후로 다시는 본 적 없는 청년.

세 번째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신사 아저씨.

네 번째는 가만히 앉아 울기만 하던 할아버지.

그리고 지금 다섯 번째.


 ‘이 분들이 내일 퇴원하고 나면 여섯 번째도 아마 생기겠지? 일곱 번은 안 채웠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오래 입원해있는구나.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 병원비는 어느 정도 나올까? 다행히 보험 적용은 된다고 들었는데 만약 보험사가 막 삭감하거나 그러는 것은 아닐까?’


 많은 의문을 뒤로하고 약간 졸리는 것을 이용해 10시 반에 일찍 잤다. Temodal 먹고 구토하는 사람 없다는 승현이 형과 PA 간호사의 말이 큰 힘이 되었던 것인지 아무 일 없이 밤을 보냈다. 2시와 4시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일어났었지만 별 느낌이 없었다. 문제는 5시. 그때부터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떤 자세로 있으면 심신의 평화가 찾아올까 자리를 연신 바꾸어보지만 차도가 없었다. 혹시 나의 부산스러움에 곤히 잠든 아버지와 신혼부부를 깨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만 돌아올 뿐이었다.


 1시간가량 고민한 끝에 침을 꺼내들었다. 경혈 부위를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고 침을 놓았다. 푸른빛이 감도는 새벽녘, 다가올 아침을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고 침을 꺼내든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멋있게 느껴져 뿌듯한 마음으로 자침했다. 편안해지는 속을 느끼며 책을 보고 있는데 간호사가 찾아왔다. 교수님의 허락을 받았지만 그래도 눈치 보이는 법. 이불로 얼른 덮었다.


벌써 일어나 계시네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오늘도 구토 했나요?”
아니요. 속이 썩 좋은 거는 아닌데 구토는 안 했어요.”
어제 체크한 이후로 화장실 몇 번 다녀왔어요?”
소변은 두 번... 대변은 곧 한 번 들어갈 거 같네요.”
네, 그럼 소변은 2번. 대변은 1번”
이런 거 대답할 때마다 얼마나 쪽팔린지 몰라요. 이거는 친한 선배가 만든 마스크팩인데 한 상자 샀거든요. 하나 해보세요.
한 상자나 사신 거예요?
방사선 치료하고 그러면 열기도 얼굴에 오르고 그럴 테니까 열독(熱毒) 빼는 약재 많이 넣은 마스크팩 달라고 부탁 좀 했어요.
그게 저에게도 맞을까요?
보통 얼굴에 나는 트러블들은 열독(熱毒)이랑 상관있어서 도움 될 거에요.
저한테 그 게 필요해 보이는구나. 늦잠 자서 화장 못한 건데...
아니에요.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고. 그냥 제일 먼저 본 분에게 주려고 생각했었어요.


 혈압과 체온을 체크했다. 생각보다 높게 측정되었다. 아까 대화하면서 당황했던 마음이 몸에 반영된 듯 했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농담 하나가 떠오른다. 자기 친구 중에 장교에 지원한 사람이 있었는데 혈압 체크해주는 사람이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이라 심장이 막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혈압과 맥박 수가 기준에 맞지 않아 떨어졌다는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딱 방금 전 내 모습이다.


 샤워를 하고 갈아입을 환자복을 받기 위해 간호사실에 찾아갔다. 환자복을 기다리며 양해를 구한 후 몸무게를 측정했다. ‘89.9kg’ 충격적인 결과. 내 눈을 의심했다.

 ‘항암 치료 받으면 살 빠지는 거 아니었어?’


 옷을 갈아입고 아버지께서 아직 주무시는 틈을 타 짧은 외출을 감행했다. 병실에서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복도 끝 문을 열었다. 비상구 계단과 엘리베이터 사이의 난간에서 서서 아침햇살을 느끼며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유리창에 비친 바깥세상은 활기찼다. 급한 콜을 받은 것인지 뛰어가는 흰 가운. 바쁠 것 하나 없는 병상 생활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흰 환자복. 그 사이를 채우는 여러 색깔의 옷들. 마치 유리창이 영화관 스크린 마냥 그것을 통해 본 세상은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친구 만나러 차도 끌고 오고 그랬는데 다 거짓말 같다. 다시 원래대로, 저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있는 여기가 영화든, 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영화든 다른 세계임이 분명하다. 나는 지금 전혀 다른 두 세상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 내 처지가 우스갯소리로 종종 이야기했던 나의 이상형을 떠오르게 한다. 병원 침대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에 눈부셔하면서도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며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 내가 그녀가 되어버린 것 같은 아이러니함에 상실감을 느끼며 병실로 돌아왔다. 잃어버린 것들이 하나둘 생각나 심란하다. 멘탈관리를 위해 나를 떠받치는 말 한 마디를 떠올려본다. 진심 어린 조언은 평생을 걸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금과옥조(金科玉條)와 같은 조언이 나에게는 2개나 있었다.



68 카운트 다운Ⅳ 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내려놓음 66 카운트 다운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