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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3. 2016

[소설] 내려놓음 69 카운트 다운Ⅴ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69 카운트 다운Ⅴ




 하루에 한 번 방사선 치료.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오는 식사와 약들. 그리고 자기 전에 먹는 Temodal 160mg. 간간히 찾아오는 전공의와 간호사들. 간간히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이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구분 지어줄 뿐이다.


 남는 시간들은 침대에 앉아 책을 보고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도 계속 모색하였다. 국립의료원에 근무하는 명아 누나에게, 우리 학교 병원 암센터에 있는 정민이 누나에게 연락해서 각종 암 치료에 대한 최근 동향들을 모았다. 큰 맘 먹고 침구과 교수님에게도 연락드렸다. 학창 시절부터 나를 아끼셨던 교수님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예전에 블로그를 열심히 했었던 08학번 김동완입니다. 혹시 진료중이시거나 강의중일 수 있을 것 같아 실례지만 이렇게 메시지로 보냅니다.

제가 얼마 전 극심한 어지러움과 구토 증상 때문에 MRI를 찍었다가 심한 뇌부종과 종양을 발견하고 수술했으며 조직검사 결과 악성 성상세포종으로 나와, 병원에 입원하여 방사선 치료와 화학 요법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입원해있는 동안 저도 치료에 동참하고 싶어서 침을 챙겨왔는데 어디에 놓으면 좋을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아 염치 불구하고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자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연락드리게 되어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30분 뒤에 답장이 왔다.

이야기 들었다. 참으로 애석하구나. 그렇지 않아도 한 번 연락하려 했다.

뇌종양에 쓰는 혈(穴)은 동씨기혈 중에 상류(上瘤)라고 있다. 아마 양유걸 선생 책에는 없을 거고 호문지 선생 책에 있으니까 참고하고.

내가 이것으로 뇌종양 환자 호전시키기도 했으니 추천한다.


 메시지와 함께 정확한 경혈 자리가 담긴 사진과 배합하면 좋을 침구 처방 자료들도 같이 보내셨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가 참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살았구나.’


 관련 논문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에 검색하자마자 뉴스 기사가 하나 보였다. 양방 대학병원에서 3~6개월 생존이 예측되어 재수술 및 방사선 치료를 거부당한 뇌종양 재발 환자를 침 및 약침을 주된 치료법으로 하여 18개월간 치료한 결과 종양의 크기가 현저히 줄었다는 증례 보고가 국제 학술지 JAMS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논문의 저자들은 나의 모교 교수님들이었다. 그 중에는 방금 메시지를 보내주신 교수님도 있었다. 희망이 샘솟는다.


 본과 시절, ‘영어논문강독’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교수님이 선정한 영어논문을 해석하고 내용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우리 조가 맡았던 논문은 양방 단독 치료, 또는 한방 단독 치료보다 양 한방 협진이 이루어졌을 때 만족도나 삶의 질, 치료 효과에서 우위가 나타났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한의학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고 어느 정도 수용해주고 있는 병원 의료진과 전적으로 치료를 믿고 받아들이면서 한의학적 치료도 가미하려는 젊은 한의사 환자. 이 보다 더 협진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 싶다.


 한의계에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원과 한의원 모두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환자들이 병원에서 받아온 진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고 양방의 생리 및 병리에 대한 교육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나는 그중에서 심계(心系)내과학의 신경계 파트의 학술위원이었다. 그래서 어렴풋이나마 나의 대략적인 상태, 경과, 예후 등을 듣고 이해하고 있다. 잘 모르거나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생겼을 때 친절하게 답해주는 신경외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내과 전문의들이 주변에 있고 한방신경정신과, 침구과, 심계(心系)내과 교수님들도 신경써주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젊다. 모든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무언가를 탄생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짜놓은 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거기에 주인공으로 간택된 나.


 ‘지금 나는 주인공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걸까?’


 열심히 했다. 밥 먹고 산책하는 시간 몇몇을 제외하면 책 정리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렇다고 마냥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제주도에 놀러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공보의 형들을 부러워하고 같이 골프를 시작한 홍윤이가 싱글 쳤다는 소식에 낙담하며 세상에서 유리된 나 자신을 한탄하기도 했다. 병문안 온 준수 형이 주고 간 책과 민성이 형이 심심할 때 하라고 준 보드게임을 하며 간간히 휴식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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