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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18. 2016

[소설] 내려놓음 82 면담Ⅶ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82 면담Ⅶ




 실제로 난 살이 정말 잘 쪘다. 한참 120kg대에서 70kg대까지 다이어트 하던 시절 친한 형과 3박 4일로 내일로 기차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첫날은 진주, 둘째 날은 순천, 셋째 날은 여수, 넷째 날은 보성과 담양을 가는 강행군을 펼쳤다. 20대 초반의 왕성한 체력을 믿고, 짐 잔뜩 짊어지고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아침은 대충 삼각김밥으로 때우며 다녔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점심과 저녁은 그 지역 맛집에 투자했는데 그 마저도 나는 다이어트 중이라 밥 반 공기를 뚝 떼서 식사량이 많은 형에게 덜어주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고 나는 3kg이 늘었고, 반면 형은 4kg이 빠졌다. 매일 찜질방에서 잤기 때문에 샤워하고 나서 늘 몸무게를 측정했기에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었다. 같이 움직였고 식사량은 2~3배 차이 나는데 도리어 나는 찌고 형은 빠져버린 상황에 서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의 몸 상태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나의 상태에 대해 재미있는 가설 한마디씩 던졌다.


너는 지금 니 지방이 이 세상에 살아 숨 쉬고 싶어 하는 욕망에 얹혀사는 것이 분명해.
너의 seizure 시작이 적어도 작년 8월이고 성상세포종이 대개 진행이 빠른 걸 감안하면, 크기가 엄청 커야할 텐데 이정도 밖에 안 자란거보면 니가 종양을 굶긴 게 분명하다. 종양이 먹고 자라나야 할 에너지가 다 살로 가버린 거지.

 왠지 다 설득력 있어 보였다. 합쳐보면 ‘지방이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종양조차 굶겨버린 몸뚱아리가 항암치료가 가져오는 체중 저하도 막아내었다.’ 정도가 되려나?


 면담을 기다리면서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을 검색해보았다.

 ‘이 분 맞나? 2013년에 석사 학위 따셨네. 전문의도 그 즈음인 거 같고. 대충 시간 따져보면 펠로우 2~3년차쯤 되겠다. 그럼 초년 차에 하는 실수는 없고, 전문의 시험친지 얼마 안 돼서 지식은 빵빵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에는 이른 시간이고. 최고의 타이밍인데?’


김동완 환자분. 몸은 좀 어때요?”
딱히 아픈 것은 없는데 속이 좀 더부룩하고 머리를 움직이면 뇌가 마치 한 발짝 뒤에 딸려오는 느낌으로 어지러워요.
토하거나 그러지는 않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먹는 것도 잘 먹고요.
음... 그건 뇌부종 때문이에요.
아직 종양이 많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아뇨. 지금 방사선 치료를 하고 있죠? 그럼 종양을 타깃으로 방사선을 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 경로에 있는 세포들도 어쩔 수 없이 같이 파괴되어요. 전에 말씀드렸죠?
네. 그래서 3차원 시뮬레이션 돌려서 정상 조직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경로를 찾고, 저선량 치료법인가 먼가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던가? 여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비슷해요. 그렇게 되어서 방사선 지나간 자리의 조직들이 손상되면 회복시키기 위해 염증이 발생해요. 염증이 생기면 붓게 되고. 그래서 지금 뇌가 부어버린 거죠. 뇌가 부어있으니까 뇌압상승 징후를 보이는 거고.


아, 그럼 종양이 커진 게 아닐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요?
종양이 커져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겠지만 지금 치료 진행 중이니까 그럴 가능성은 적죠.
그럼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그런 것들이 바로 사라지나요?
바로 염증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라서 시간은 좀 걸려요.
어쩐지 방사선 치료 받고, 집에 가면 몽롱해서 잠이 막 오더라.
많이 불편하시나요? 보통 치료할 때 뇌부종이 심해서 많이 힘들어 하시는 분들은 스테로이드를 같이 처방해서, 붓기를 가라앉히면서 치료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좀 자고 나면 체력도 회복되고, 그러면 멀쩡하게 일어나서 자전거 돌리거든요.


안 그래도 환자분 문 열고 들어오실 때 걸음걸이 봤는데 멀쩡했고 말씀하시는 거도 보니까 별 이상 없어 보이고. 몸 상태 괜찮으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더 궁금한 점은?
없어요.
그럼 치료 받으시러 가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의사의 진료는 시작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선생님에게 또 한 번 신뢰를 느낀다. 교모세포종이라는 진단명을 보고 낙담하고 있던 나를 위해 CT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리고 계셨던 선생님.

 ‘어떻게 만나는 의사마다 다 좋은 분이지?’


 좋은 인연에 감사하며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83 외출Ⅰ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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