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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Nov 16. 2018

건조시킨 조기에게 굴비의 이름을 선사한 이자겸

고려시대 문벌 귀족의 진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인물이 이자겸(?~1126)이다. 이자겸은 인주 이씨(오늘날 인천 이씨)로 고려 현종 때부터 왕실의 외척으로 중앙으로 일찍 감치 진출한 명문가 출신이었다. 이자연이 세 딸을 문종에게 시집보낸 것을 시작으로 11대 문종에서 17대 인종에 이르기까지 이자겸 집안은 10명의 왕후를 배출했다.


특히 이자겸은 둘째 딸을 예종의 왕후로 만들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14살의 인종을 왕위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권력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자겸은 셋째와 넷째 딸을 인종에게 시집보내버린다. 이로서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면서 두 부인의 장인어른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왕실의 모든 여인들이 이자겸의 집안사람들이다보니 궁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활용하여 자신의 정적들을 모두 제거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되면서 왕마저도 자신의 아래로 여기는 행동을 많이 보여주었다.


이런 행동은 권력을 탐하는 수많은 아첨꾼을 모이게 하면서 이자겸의 집에는 수많은 재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재물이 쌓이는 만큼 부정된 방법으로 관직에 오르는 자들이 늘어났다. 점차 백성과 국가를 위한 충신들이 설 자리는 없어지고, 오로지 이자겸을 위한 충신들만이 가득해졌다. 상황이 이러하니 백성들은 더 이상 국가에 기대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자겸은 자신의 이익에 해가되거나 권력을 흔들 수 있는 일은 절대 용납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고려에 요구한 사대관계에 응한 일이었다. 금나라와 전쟁에서 만에 하나라도 지게 된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이자겸은 인종에게 금의 신하임을 자처하게 했다. 그리고 금나라가 요구하는 수많은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을 채근하여 재물을 강제로 빼앗았다. 



출처 : KBS

이런 이자겸에게 인종의 성장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성인이 된 인종은 더 이상 이자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자겸의 꼭두각시로 왕의 자리에 있지 않고, 왕다운 왕이 되기 위해 인종은 이자겸을 내쫓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왕실의 모든 사람들이 이자겸의 눈과 귀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인종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이자겸에게 발각되고 만다. 이자겸은 사돈이자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토벌했던 고려시대  최강의 장수 척준경을 불러들여 궁궐이 불태우고 인종을 무릎 꿇게 만든다. 무릎을 꿇은 인종은 자신이 운명이 다했음을 알고 이자겸에게 왕위를 양위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자겸은 내심 왕위를 넘겨받고 싶었지만, 그럴 경우 신하와 백성들의 반발이 심할 것을 우려하고 사양했다. 겉으로는 인종의 신하임을 자처했지만 실질적으로 왕을 대놓고 무시하면서 왕처럼 국정을 운영했다.


그러나 인종은 뚝심 있는 인물이었다. 본심을 감추고 숨을 죽이고 있던 인종이 척준경과 이자겸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척준경을 불러들인다. 척준경의 충성심을 부각시키며 위태로운 고려를 일으킬 사람은 척준경밖에는 없다고 호소했다. 이자겸이 궁궐을 불태운 책임을 자신에게 떠넘긴다고 생각하던 척준경에게 인종의 호소는 새로운 돌파구이자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 이자겸의 손과 발의 역할을 하던 척준경은 군사를 이끌고 이자겸을 손쉽게 체포하였고, 인종은 이자겸을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를 보냈다. 


인종은 이자겸의 사람들이 궁궐에 남아있고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던 이자겸을 죽이는 것이 백성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출 수 있다는 생각에 유배를 보낸 이후에도 가혹한 행위를 하지 못한 듯싶다. 권력에서 내쳐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전라도 영광에서 권세를 누렸음을 짐작케 하는 것이 이자겸이 인종에게 진상한 굴비(掘非)다. 조기라는 이름 대신 자신은 비굴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굴비로 진상을 올린 이자겸은 왕에 대한 무례함을 반성하지 않는 대가인지 모르지만 얼마 뒤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굴비라는 이름이 당당해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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