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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Nov 23. 2018

선조를 비난하는데 사용된 도루묵

조선시대 가장 무능력하고 비겁한 왕을 꼽는다면 선조와 인조를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특수성이 있기에 국정을 책임지는 왕으로서 비난을 받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 둘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선조는 조선시대 최초로 서자로서 왕이 된 인물이다. 선조는 중종의 서자였던 덕흥군의 셋째아들로 누구도 왕이 될 것이라 생각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서자들은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도 없고, 선조들의 제사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런데 직계도 아닌 방계의 선조가 왕이 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 이런 움직임은 자연스레 콤플렉스로 자리 잡았고 선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신하들을 이간질하여 서로 분열시키고 싸우게 한 뒤, 한 쪽을 편드는 방법으로 정국을 운영하는 방식은 피비린내 나는 일들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정여립의 모반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1,000여명의 사람을 죽인 기축옥사를 자신이 주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은 정철에게 뒤집어 씌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선조가 벌인 치졸하고 비겁한 일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로 선조가 한성을 버리고 개경, 평양 그리고 의주로 피난가면서도 백성들에게 늘 자신은 여기서 뼈를 묻을 각오로 왜를 맞아 싸우겠다고 공언한 일이다. 이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선조는 왜군의 조총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북진하고 있다는 소리만 들리면 누구보다 먼저 도망갔다. 


출처 : KBS

그리고 의주로 가는 길목에서는 명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왕위를 버리고자 했다. 모든 문무백관이 그것만은 안 된다고 하자 광해군에게 관리를 나누어주면서 종묘사직을 받들고 왜에 맞서 싸우라며 최전선으로 내보냈다. 광해군은 이런 상황에서도 힘을 내어 16개월 동안 의병을 독려하고 관군을 모아 왜에 맞서 싸웠다. 이처럼 아버지를 대신하여 국난 초기 어려웠던 전쟁을 수습하고 백성들을 다독였던 광해군을 예뻐하거나 고마워하기보다는 선조는 시기 질투했다. 광해군이 서자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말년에 인목대비에게서 낳은 영창대군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광해군을 대놓고 무시하고 따돌렸다.


이와 같이 선조는 자신의 입장에만 맞는다면 기존에 자신이 어떤 말과 행동을 했던 크게 괘의치 않았다. 이런 선조를 꼬집는 재미난 이야기로 도루묵이 있다. 선조가 피난길에 백성들이 정성스레 갖다 바치는 음식들은 독이 들었을까 의심스러워 먹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피난길에서 고단해진 선조는 의심보다는 배고픔에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은 음식중의 하나가 ‘묵’이라는 생선이었다.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생선이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조의 입에 들어가는 순간 고기가 살살 녹아버렸다. 선조는 이처럼 너무 맛있는 생선의 이름이 ‘묵’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손수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내린다.


피난길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후 어느 날, 선조는 묵이 너무나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묵을 다시 맛 본 선조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나 맛없는 묵의 맛에 실망한 선조는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한 것이 너무 아까워 다시 묵이라고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이처럼 선조가 ‘도로 묵이라 불러라.’해서 붙여진 도루묵은 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일을 추진하다 실패했을 때 ‘말짱 도로묵이다.’라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도루묵의 이야기가 선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항간에서 선조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은 당시 또는 후대의 사람들이 선조의 행동을 비난하고 조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지도자는 개인의 일생에 있어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힘든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선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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