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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an 11. 2019

왕을 가장 무시한 건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

세도정치기간 동안 왕권이 무너지면서 유능한 왕족들은 숨을 죽이며 살아가야했다. 혹시라도 안동 김씨의 눈에 벗어나는 경우에는 혹독한 응분의 대가를 받아 모진 삶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칼을 갈며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왕실 사람이 있었다. 훗날 10년동안 조선을 통치했던 흥선 대원군(1820∼1898)이 그 주인공이다. 


흥선대원군은 선왕들이 신하들 앞에서 생각하는 바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혹시라도 바른 소리를 하면 신하들의 거센 항의에 곧바로 잘못했음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해져 가는 왕권을 바로 잡아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에는 흥선 대원군 스스로도 세도가에게 많은 멸시와 무시를 당했던 경험도 기인한다. 


흥선대원군이 젊은 시절 충청북도 괴산에서 송시열을 배향하는 화양서원 앞을 지나다가,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생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왕족이라고 밝혔음에도 몰매를 맞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조선을 이씨의 나라로 되돌리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남연군 묘

흥선 대원군의 집념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풍수지리가가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수 있다는 말에 사찰을 쫓아내고 연천에 있던 아버지의 묘를 충남 예산으로 이장하였다. 영종도의 용궁사에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영험스러운 옥부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이곳에서 10년동안 기거하며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기를 기도하였다. 이런 집념을 바탕으로 철종이 죽자 조대비와의 협상을 통해 자신의 12살짜리 둘째아들 명복을 왕으로 즉위시켰다. 이 왕이 바로 제26대 고종(재위 1863~1907)이다.


어린 나이의 고종이 직접 정치를 할 수 없었기에 자연스레 흥선 대원군이 섭정형식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나갔다. 흥선대원군의 목표는  ‘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이었다. 이후 모든 정책은 세도가의 힘을 약화시키고, 모든 권력을 왕실에 집중시키고자 하면서 그동안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하였다. 


왕권을 강화시키는 방법은 정치와 경제 두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정치적으로 안동 김씨의 기반이 되었던 과거제와 세자 비를 간택하는 비변사를 폐지하고 서원을 철폐하였다.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의 기능을 회복하자 소신있고 능력 있는 인물들이 조정을 메우기 시작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안동 김씨와 그들을 추종하는 관료와 양반지주들이 국가로 들어올 세금을 착복하지 못하도록 막고, 국고를 채우기 위한 경제개혁에 착수하였다. 세금을 고의로 누락시키던 관행을 막기 위해 토지조사를 통해 조세를 부과하였다. 그리고 양반들에게 주어졌던 군역 면제의 특권을 없애고 호포제를 통해 군포를 걷어들였다. 또한 관료들이 환곡을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폐지하고 향촌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경복궁

이런 정책들은 양반 지주들의 반발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백성들을 괴롭히던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하지만 흥선 대원군 정책은 백성을 위해 벌인 일은 아니었다. 그는 왕권이 먼저 바로서야 백성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위해서 임진왜란 이후 재건되지 않던 경복궁을 다시 중건하여 온 천하에 왕실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경복궁을 중건할 재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흥선 대원군은 일종의 기부금이라 할 수 있는 원납전을 강제 징수하고, 당시 화폐보다 100배의 가치가 있는 당백전을 발행하였다. 그리고 일 년 농사의 풍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농번기에 백성을 강제동원하여 경복궁을 짓게 하였다.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들은 백성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이로서 왕권을 바로 세운다는 명목아래 행했던 많은 정책들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모두의 반발을 가져왔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정권에서 밀려나 실각하였다. 아들이기 전에 왕이던 고종을 가장 무시하여 왕권을 추락시킨 것이 정작 자신인지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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