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길로 전국 어디를 가도 화사함이 가득하다. 꽃길을 따라 찾아든 많은 사람들로 산천 곳곳에 생기가 감돈다. 수많은 꽃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곳이 섬진강을 따라 가는 하동이다. 넓지 않은 차도는 번잡하지 않았던 70~80년대를 연상시킨다. 운전을 하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굽이굽이 잔잔하게 흐르는 섬진강이 보인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중간 중간 고개를 내민 곳에는 섬진강 물길이 작은 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강 너머로는 수줍게 울긋불긋한 자태를 내보이며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들이 가득하다. 창밖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진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자연풍경이 아쉬워진다. 그럴 때마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정자에 차를 세워놓고 쉬어간다.
전라도 장수군과 진안군 경계에 있는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광양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은 남도 특유의 편안함을 준다. 높지 않은 산과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상상케하는 섬진강은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하는 압박감에 억눌려 있는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이처럼 아름다운 섬진강은 고운 모래가 많아 옛날에는 사천, 모래가람이라 불리었다. 또한 달빛에 비치는 모래의 반짝거림은 옛 사람들에게 달나라를 연상시켰다. 섬진강을 달에 있는 나루라 여긴 선조들은 달나루라 불렀고, 점차 달래로 줄여 불렀다. 이후 우리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섬진강[蟾津江]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유래는 두꺼비와 관련되어있다. 고려 말 우왕 11년인 1385년 왜구가 섬진강을 거슬러 침략하자, 수십만 두꺼비가 크게 울어 광양으로 내쫓았다. 이후 사람들은 두꺼비 섬(蟾)을 사용해서 두꺼비 나루란 뜻의 섬진강으로 불렀다. 어느 유래가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섬진강은 아름다운 자연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힘들어하던 우리의 역사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에 왜구가 유독 자주 침략한 까닭은 남해의 풍부한 해산물과 평야에서 수확되는 맛있는 곡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말 하동 읍에서 열린 5일장은 매우 커서 섬진강 하구의 많은 지역에서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얼마나 많은 모였는지 40~50여척의 배로 하동포구가 가득 찼다고 한다. 이렇듯 남도를 대표하는 하동포구도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다. 좌우로는 순천과 진주가 예전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고, 밑으로는 광양에 제철소가 생기면서 하동은 한적한 시골마을로 변화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조용했던 이곳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은 1970년대 하춘하의 “하동포구 아가씨”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였다. 하동출신의 작사가였던 정두수가 쓴 “하동포구 아가씨”는 하동의 자연을 서정적인 가사로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하동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가사에 가슴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사랑하는 임을 보고 싶어 하는 노래가사가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휘돌아가는 쌍돛대 임을 싣고 포구로 들고, 섬진강 맑은 물에 물새가 운다.
쌍계사 쇠북소리 은은히 울 때, 노을 진 물결 위엔 꽃잎이 진다.
흐르는 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지리산 낙락장송 노을에 탄다.
다도해 가는 길목 섬진강 물은 굽이쳐 흘러흘러 어디로 가나.
팔십 리 포구야 하동포구야. 내 님 데려다주오 - 하동포구 아가씨
“하동포구 아가씨” 노래비는 하동포구공원에 세워져있다. 하동 인근에 사는 분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하동포구공원은 식수대와 테이블 등이 갖추어져 편의성이 매우 좋다. 특히 대규모 소나무 군락지인 이곳은 우리에게 멋진 풍경과 함께 건강한 피톤치드를 가득 안겨준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소나무 숲길을 걷는 시간은 편안함을 준다.
사실 하동포구공원의 소나무 숲은 그 가치가 매우 높다. 900여 그루의 소나무들이 길이 430m에 폭 110m에 가득 있는 하동포구공원 소나무 숲은 국내 최대 규모로 2005년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예전에는 3,000여 그루로 더욱 장관이었을 소나무 숲은 영조 때 하동 도호부사로 왔던 전청산이 섬진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1745년 인근 주민들을 동원해 조성하였다. 그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 하동에 사는 후손들에게까지 도움을 주는 소나무 숲을 조성한 전청상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동포구공원은 걷는 재미도 있다.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소나무들에 재미있는 이름을 붙여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해낸다. 맞이나무, 못난이나무, 원앙나무 등 작명한 이유를 쉽게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재미있는 이름을 붙일만한 주변 소나무를 살피게 된다.
하동포구공원을 거닐다보면 2000년 인기리에 종영된 “허준” 드라마의 마지막 촬영지임을 알려주는 표식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드라마지만, 당시 드라마 “허준”의 인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국회의원 선거운동을 도와줄 당시, “허준”이 방영되면 선거사무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티비 앞에 모여들어 숨죽여 방송을 지켜봤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하동포구공원에서 만나는 “허준” 드라마는 매우 반갑다.
남도여행 당시 하동포구공원은 여행목록에 담겨있지 않았었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두 딸이 마음껏 뛰놀게 하려고 들렸던 하동포구공원은 생각지도 못한 큰 수확이었다. 섬진강이 주는 편안함과 함께 소소한 기록 그리고 나의 추억들이 어우러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생각을 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