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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Mar 09. 2021

암행어사도 탐관오리다


1800년(정조24년) 정조가 죽고 순조가 11살의 나이로 왕에 즉위하자, 조선의 정국은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노론 벽파에 의해 정조가 육성했던 신진 관료들은 귀양을 가거나 죽임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시파 출신인 김조순은 정조의 명을 따라 순조를 옆에서 보필하며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804년(순조4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순조가 직접 정치의 일선에 나오자, 김조순은 노론 벽파를 몰아내고 안동 김씨가 정국을 주도하는 세도정치를 시작하였다.


안동 김씨 세도가는 비변사를 통해 인사권을 독점하고 주요 관직을 독점하고 관직을 매매했다. 관직을 얻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세도가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치고 벼슬을 얻었다. 그러나 관직을 얻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더 좋은 관직을 얻거나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세도가에게 뇌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리고 일명 “삼정의 문란”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농민에게서 수탈하여 재물을 마련했다.


부정·비리를 저지르는 수령의 수탈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의 불만이 높아지자, 조정은 관리들의 부정을 바로 잡기 위해 암행어사를 보냈다. 정부는 부조리를 바로 잡는 암행어사를 보내면, 수령들이 잘못된 행위를 멈추고 선정을 베풀 것이라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오늘날 비밀감찰에 해당하는 암행어사는 비밀리에 업무를 진행해야 하지만, 세도정치 기간의 일부 암행어사는 수령에게 몇 날 몇 시에 방문하겠다고 미리 통보하고 방문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암행어사도 자신의 능력보다는 세도가에게 뇌물을 갖다 바치고 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암행어사는 수령과 달리 직접 백성을 상대로 수탈할 기회가 없었다. 또한 암행어사보다 세도가와 더 밀접한 수령을 잘못 건들면 삭탈관직당할 위험성도 컸다.



결국 일부 암행어사는 풍요로운 지역으로 감찰을 많이 나갔고, 그곳의 수령에게 뇌물을 요구했다. 수령은 암행어사가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뇌물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명목으로 백성을 또다시 수탈했다.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수령과 암행어사의 뒷거래를 잘 아는 백성들에게 암행어사는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해줄 관리가 아닌 수탈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암행어사가 같은 지역으로 여러 번 오는 경우 암행어사의 방문을 거부하는 집단행동을 표출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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