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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Aug 17. 2021

죽은 자의 손가락과 음경을 훔친 사람을 처벌하다.- 상


☞ 癸未/雷雨。 震人及牛于豐海道 鳳州。 有人牽牛而行, 震死。 人有截死者兩指及陰者, 觀察使照律論罪。-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1403년) 5월 7일 계미 1번째 기사
 
☞ 우레가 치고 비가 내렸는데, 풍해도(豊海道) 봉주(鳳州)에서 사람과 소가 벼락맞았다.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가다가 벼락맞아 죽었는데, 죽은 자의 두 손가락과 음경(陰莖)을 잘라 간 사람이 있었다. 관찰사(觀察使)가 율(律)에 의하여 논죄(論罪)하였다.
 
∴풍해도(豐海道); 황해도
∴논죄(論罪); 죄를 논하여 벌을 내림.
 
일생을 살아가면서 벼락을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벼락 맞을 확률은 조사기관의 통계치마다 다르지만 보통 1/50만으로 추정한다. 대한민국 기상청 낙뢰 발생 통계를 보면 2019년 65,721번 낙뢰가 내리쳤다. “이렇게 많은 벼락이 친다고?”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2010년 124,346번, 2013년 221,031번, 2017년에는 벼락이 182,439번 관측된 기록과 비교해보면 2019년은 벼락이 유독 적게 친 해이다. 2010~2019년까지 총 10년 동안 낙뢰 발생 평균을 보니 124,346번이다. 사람의 수명을 80년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사는 동안 총 9,947,680번의 벼락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대략 천만번 내리치는 벼락을 맞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매우 운이 좋은 삶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우리는 벼락을 맞고 죽으면 매우 운이 없다고 여기거나, 큰 잘못을 저질러 하늘로부터 천벌 받았다고 여겼다. 옛말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벼락 맞을 놈”, “그러다 천벌 받으면 어떡하려고 해.”라고 말하며, 잘못된 행동을 깨닫고 경계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벼락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깊이 관여하여 영향을 미치는 관념적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선조들은 벼락 하나에도 여러 의미를 두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이정표로 삼았다.
 
그런데 오늘날 황해도 봉산군 지역에 해당하는 풍해도 봉주에서 태종 3년(1403년) 벼락과 관련하여 엽기적이면서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벼락을 맞아 죽은 시신의 손가락 두 개와 음경이 누군가에게 잘려나간 것이었다. 벼락을 맞아 죽은 것도 억울한데 누군가에 의해 시신이 훼손당했으니, 죽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은 복장이 터질 만큼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조선왕조실록에는 벼락맞은 사람의 두 손가락과 음경이 왜 잘렸는지에 관한 이유가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시신이 훼손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벼락 맞아 죽은 사람과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의 소행이거나, 두 번째로 불치의 병을 치료하거나 정력제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신을 훼손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신 훼손이 원한 관계임을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조선왕조실록에 여럿 나와 있다. 한 예로 세조 1년(1455년) 12월 12일 기록에 이석산이 친구 신간과 함께 놀러 갔다가 여러 날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이석산의 노비가 형조를 찾아가서 주인 이석산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사건이 있다. 형조에 잡혀간 신간은 이석산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이석산이 첨지 민발의 첩 막비와 간통하고, 기생 금자를 유혹하려 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이석산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4일 뒤인 16일, 의금부에서 이석산의 시신을 반송정 밑에서 찾았는데, 시신이 칼로 잔혹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의금부는 이석산의 눈이 파여 있고 음경이 잘려져 있는 잔혹함에 꼭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세조에게 이석산을 죽인 범인을 고발한 양인에게는 2자급을 올려 관직을 주고, 천인은 면포 1백 필을 현상금으로 걸어서라도 잡을 수 있도록 윤허해달라고 요청했다.
 
민발(1419~1482)이 세조가 왕이 되는데 크게 공헌한 무신으로 원종공신 1등에 책록된 만큼, 그의 첩이 관련된 사건을 세조는 중차대한 사건으로 보았다. 개인의 치정 살인이 아닌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배후 세력의 짓이 아닌지, 또는 자신이 즉위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까 걱정되었다. 세조는 조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확인하기 위해 발견된 시신이 이석산이 맞는지 재차 물었다. 그리고도 탐탁치 않았는지 국왕의 비서 역할을 담당하던 동부승지 이휘(?~1456)를 의금부에 보내 시신을 다시 검안하도록 하였다.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이 이석산이 맞다고 확신한 이휘는 곧바로 신간의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민발의 첩 막비 집을 찾아가 조사를 하였다. 이휘가 그녀의 집을 탐문해 보니 벽에 뿌려진 피를 감추기 위해 종이를 바르고, 바닥에 스며들은 피를 없애기 위해 흙을 깎고 모래로 덮은 흔적이 역력했다. 이석산이 피살된 사건 현장임을 직감한 이휘가 무슨 피냐고 묻자, 그 집 주인이 “말을 치료할 때 흘린 피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휘가 의심을 풀지 않고, 주변을 더 수색하니 작은 창이 나왔다. 발견된 창을 이석산의 시신에 있는 구멍에 맞춰보니 딱 막았다. 그 외에도 이석산의 한쪽 발에서 벗겨져 사라졌던 신 한 짝도 방석 밑에서 발견되었다.
 
이휘는 민발이 질투에 눈이 멀어 첩과 사통한 이석산을 살해한 범인이라 확신하고 체포하였다. 그러나, 세조가 민발의 지위가 재상에 이르고 원종의 공이 있으니 구속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승정원은 이석산도 공신의 후손이므로 민발의 죄를 덮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세조는 다시 범인을 찾으라고 명령하였다. 세조가 자신이 왕이 되는데 많은 공로를 세운 민발을 감싸준 것인지, 아니면 민발에 대한 음해라고 생각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많은 사람이 이를 갈았다는 기록을 보아, 세조의 판단이 옳다고 보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세조 때 일어난 이석산 살해 사건은 후대의 일이지만, 시신의 음경이 훼손되었다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민발이 첩의 간통을 목격하고 분개한 나머지 이석산을 납치·살해하고 음경이 자른 사건을 보았을 때, 황해도 풍주에서 벼락 맞고 죽은 사람도 간통을 벌이다가 음경이 잘려나갔을 가능성이 있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크게 부는 날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만남을 갖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부는 날, 죽은 사람이 누군가의 아내 또는 첩을 만나 부정을 저지르고 돌아오던 중, 벼락을 맞아 죽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아내와 부정을 저지른 남자를 죽이고자 쫓아오던 남편은 갑자기 내리치는 벼락에 간통한 남자가 맞는 모습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꼼짝달싹하지 않는 남자를 보고 처음에는 너무 놀라 어쩌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우물쭈물하다가, 남자의 시신으로 걸어가 정말 죽었는지를 재차 확인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실소를 터트리며 하늘이 천벌을 내렸다고 생각하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간통한 남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이 너무도 억울해 시신을 훼손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죽은 남자의 두 손가락과 음경을 간통을 저지른 아내 앞에 던지며 복수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사건이 치정과 관련하여 시신을 훼손된 사건이라면 매우 끔찍한 범죄다. 지금도 치정과 관련한 살인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신을 훼손하는 일이 잊힐 만하면 뉴스에 나온다. 2014년 동거녀를 토막살인한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2015년 아내를 토막 살인한 후 시흥시 시화호 오이도 선착장 부근에 버린 사건, 50대 세입자가 60대 집주인 여성에게 구애를 거절당하자 살해한 사건 등 생각조차 하기 싫은 무서운 범죄가 우리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서울지역 살인 혐의(살인 및 치사) 사건의 범행 수법에 따른 유형화 연구-SCAS자료에 대한 잠재계층분석의 적용(박정준‧이수정‧홍정윤, 한국경찰학회, 2020)”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경찰청 과학적범죄분석시스템(SCAS)에 입력된 총 216개의 살인혐의를 분석한 결과, 치정 살해형 가해자는 범행 시 흉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한, 치정 살해형 가해자 유형이 69건(32%)으로 가장 높은 발생 비율을 보였으며, 범행 후 시신을 유기‧훼손한 경우도 28건(13%)이나 되었다. 이 논문은 치정과 관련된 살인이 극도의 흥분과 복수감으로 시신을 훼손하는 일이 높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만큼 치정은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어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방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태종 3년 벼락 맞은 남자의 두 손가락과 음경을 잘라 간 사람이 간통녀의 연인이거나 배우자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 하편은 내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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