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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Aug 18. 2021

죽은 자의 손가락과 음경을 훔친 사람을 처벌하다.- 하


두 번째 추정은 병을 낫게 하려고 시신 일부를 잘라 갔을 가능성이다. 오늘날과 가장 가까운 1900년대 초 일본 창기 진출과 공창제 허용으로 매독과 임질 같은 성병이 유행했다. 특히 그리스 신화의 양치기 시필루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매독은 치료가 어려웠다. 15~19세기까지 유럽 인구의 20%를 감염시켰고, 1910년대에야 매독 치료제가 개발될 정도로 인류를 괴롭히던 매독은 20세기 조선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매독 치료제를 구하기 힘들었던 민간에서는 매독 치료에 인육(人肉)이 좋다는 말에 매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덤을 파내 시신 일부를 먹기도 했다.


선조 9년(1576년)에도 인육과 사람의 간·쓸개가 매독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였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흉악한 무리가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홀로 길을 가는 성인 남성이나 여성도 납치하여 배를 가르고 쓸개를 꺼내는 범죄가 연신 일어났다. 사람의 쓸개가 비싼 가격에 거래되자, 산골짜기에 있는 나무마다 배를 갈라져 쓸개가 없는 시신이 묶여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신들이 나무에 매달려있었는지 나무꾼들이 산으로 나무하러 가지 못할 정도였다. 조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범인을 신고하거나 잡는 사람에게 포상을 약속하며, 사람의 간과 쓸개를 구하고자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 못하게 여기는 범인을 체포하고자 노력했다.


매독이 조선 중기에 들어온 병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선조들은 병을 치료하는데 사람의 신체 일부를 으뜸으로 쳤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자녀가 병으로 앓아누운 부모를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약으로 드려 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단종 1년(1452년) 7월 16일 자에 따르면 경성에 사는 박자창의 어머니가 몹쓸 병에 걸려 기절했다. 박자창은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중 사람의 뼈를 먹으면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된다. 하지만 사람의 뼈를 구하기도 어렵고, 인간의 도리상 타인을 해칠 수도 없던 박자창은 굳은 결심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장지를 잘랐다. 잘린 손가락을 약에 섞은 뒤 어머니에게 먹이자, 병이 낫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정부는 손가락을 잘라 부모의 병을 낫게 한 박자창에게 정문을 세워주며 여러 포상과 함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종 7년(1476년) 10월 7일 자에도 무안현에 사는 자비라는 여인이 남편 박기가 병에 걸리자, 스스로 왼쪽 손가락을 잘라 음지에 말린 후 가루를 만들어 국과 술에 타서 마시게 하여 병을 낫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 가장 가까운 고종 12년(1875년) 6월 10일 기사에도 참판 박종길이 아버지 병이 심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인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이처럼 아픈 사람에게 사람의 피와 신체 일부를 먹여 병을 치료하려는 노력은 조선 시대 내내 이루어졌다. 특히 효심을 강조하기 위해 신체 일부를 부모에게 드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자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타인의 신체 일부를 약으로 쓰거나, 죽은 시신 일부를 약으로 드리며 효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장기를 불법 매매하는 범죄자도 있었다.
 
병을 치료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죽은 사람의 음경이 정력을 강화시켜주는 보약으로 생각하고 잘라 갔을 수도 있다. 예로부터 남성들은 동물의 성기를 보약으로 생각하고 오랫동안 먹어왔다. 세종대왕의 경우도 정력을 보충하기 위해 수탉 고환 요리를 즐겨 먹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은 동물의 성기를 정력강화제로 여겼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정력강화제가 수컷 물개의 생식기인 해구신이었다. 수탉과 물개의 생식기가 정력을 강화시킨다고 믿었던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수컷 물개 한 마리가 보통 50~100마리의 암컷을 거느리며 2~3개월간의 발정기 때는 하루에 10~20회 이상 교미한다. 이처럼 수탉이나 수컷 물개 한 마리가 수십 마리 이상의 암컷을 거느리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이 동물들의 생식기를 정력의 상징으로 삼고 부러워했다. 그리고 이 동물들의 생식기를 복용하면 마치 자신도 수탉이나 물개처럼 여러 여성을 거느릴 정도로 정력이 강해질 것이라 확신했다. 이 외에도 호랑이, 말, 개, 사슴 등의 생식기도 정력을 향상하는 보양제로 큰 인기를 얻었다. 오늘날에도 동물의 생식기가 정력을 좋게 만드는데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비밀리에 불법적으로 동물의 생식기를 찾다가 발각되는 일이 종종 뉴스에 나온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잘못된 사실을 믿는 사람이 있는 만큼, 그 당시 남자의 음경을 보약으로 여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양기를 상징하는 벼락을 맞고 죽었으니, 남자의 음경에 양기가 가득 찼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벽조목이라 불렀다. 양기를 지닌 대추나무에 엄청난 양기를 가진 벼락이 내리치면, 어떤 음기를 지닌 귀신도 물리칠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렇기에 음기로 이루어진 귀신처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악한 존재를 내쫓는 물건으로 여겼다. 또한,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돌보다도 더 단단해져서, 벽조목은 물에 뜨지 않고 가라앉는다. 혹시 구매한 벽조목이 진짜인지 알아보려면 물에 담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단단해진 벽조목은 글자를 새겨넣기 어렵지만, 한번 새겨지면 쉽게 마모되지 않는다. 억지일 수도 있지만, 벼락 맞은 남자의 음경을 먹으면 자신에게 양기가 보충되어 성기가 단단해질 것이라 믿었을 수도 있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는 복수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치료제, 정력 강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라고 할지라도 죽은 시신을 훼손한 것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불의의 사고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시신을 수습하고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과 감정을 못 이기고, 잘못된 미신을 맹신하여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인간으로 보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이런 범죄자들은 사회를 어지럽히고 불안하게 만드는 악의 존재로, 반드시 이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만 한다.




태종도 음경이 훼손당한 이 사건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두 손가락과 음경을 잘라 간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경계의 본을 보였다. 사자성어에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행동한 대로 대가를 받는다는 말이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그릇된 행동을 한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인과응보, 너무도 당연한 네 글자가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사회라면 분명 문제가 많은 사회이다. 최소한 나 자신과 후손을 위해서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인과응보라는 당연한 순리가 지켜지고 있는 사회인지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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