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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Feb 15. 2022

내명부에 소속되어 궁녀로 살아가다




품계를 받고 왕과 왕비를 보필하는 궁녀의 조직을 내명부라 부른다. 내명부는 크게 내관과 궁관으로 나누어지는데, 내관은 후궁으로 정1품의 빈, 종1품의 귀인, 정2품의 소의, 종2품의 숙의, 정3품의 소용, 종3품의 숙용, 정4품의 소원, 종4품의 숙원이 있었다.

이들은 왕의 여인으로서 자식을 생산하는 중요한 일을 맡았기에 삼정승을 비롯한 고관 대신들과 같은 품계를 받을 수 있었다. 후궁에는 신분이 높고 명망 있는 가문의 여인도 있었지만, 시녀・관비 등 미천한 출신으로 왕의 승은을 받아 후궁이 되는 예도 있었다. 후궁의 품계는 자식의 유무로 품계가 나뉘었는데, 아들을 낳는 경우 품계가 더 높아졌다.



또한 왕이 후궁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품계가 달라지기도 했다. 궁관은 궁궐에서 일을 도맡아 하는 궁녀로, 정5품의 상궁에서 종9품의 주변궁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품계가 없는 무수리를 종으로 삼아 지휘 및 관리하며,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족을 보필했다. 궁녀는 보통 10년에 한 번 뽑았는데, 상궁의 추천을 받은 4~10세 사이의 여아가 입궁했다. 이때 집안에 병이 들었거나, 죄를 지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또한 반드시 처녀라야 입궁이 허락되었다. 이때 처녀를 확인하기 위해 팔목에 앵무새의 피를 떨어뜨렸는데, 팔목에 피가 맺히지 않고 흘러내리면 처녀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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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 들어가도 바로 궁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앙각시라 불리는 기간 동안 교육과 실습을 받은 뒤에야 궁녀가 될 수 있었다. 궁녀는 왕에게 언제 승은을 입을지 모르는 여인들이었기에 절대로 남자와 만나선 안 되었다. 만약 남자와 정분을 통하는 경우 처형당했다. 궁궐을 나와 궁녀의 신분에서 벗어나도 연애와 결혼은 허용되지 않았다. 만약 이를 어기면 궁녀와 결혼한 남자도 곤장 100대의 형벌을 받아야 했다. 결국 궁녀가 출세하거나 남성과 정분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란 경종의 어머니 장희빈과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처럼 오로지 왕의 승은밖에는 없었다. 궁녀는 모시던 상전이 죽거나, 가뭄이 심하게 들면 음기를 쫓는다는 의미로 잠시 궁궐 밖에 나올 수 있었으나, 원칙적으로 늙고 병들기 전에는 궁궐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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