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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Feb 08. 2022

팔관회로 고려가 얻은 것은?




고려 시대 팔관회는 매우 중요한 국가 의례였다. 팔관회가 고려 시대에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신라 진흥왕 때 제천 행사와 불교 행사를 융합시켜 만든 것이 팔관회였는데, 국가적 차원의 종교 행사로 확대하고 발전시킨 인물이 왕건이었다.

태조 왕건은 관료와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활용했던 인물이었다. 왕건은 팔관회를 국가가 주관하여 부처님과 더불어 산신과 지신 등 여러 신에게 기도하는 행위가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상하고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어루만지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팔관회를 통해 실질적인 큰 도움을 받았다.






이후 태조 왕건은 유훈인 훈요십조에서도 연등회·팔관회를 소홀히 다루지 말라고 기록하였다. 왕건이 죽고 지켜지지 않은 유훈도 있지만, 팔관회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금지하기 전까지는 계속 진행되었다. 팔관회의 효과를 알고 있는 고려 왕들은 팔관회를 거창하게 준비하고 많은 사람을 개경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개최하던 팔관회를 서경과 개경에서 각각 한 번씩 일 년에 두 번 개최하였다.

서경에서는 10월 15일에, 개경에서는 11월 15일에 팔관회가 사흘씩 열리면, 많은 재인(재주꾼)이 그동안 익힌 기예를 뽐내며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또 많은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팔관회에 참여하여 여흥을 즐겼다. 팔관회에는 왜와 여진족같이 고려와 맞닿은 주변 민족만이 아니라 송나라 사신들과 상인들도 몰려들었다.





외국 사신들은고려의 왕이 행사에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 모두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맞이하였다. 그리고 이런 큰 잔치에 불러준 것에 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는 황제만이 할 수 있는 의례로, 팔관회에 참여한 모든 외국 사신들은 고려의 왕을 황제로 인식하고 받들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고려 황제가 주변국 사신의 인사를 받는 모습에 관료와 백성들은 고려가 주변 국가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팔관회가 열리는 기간에 국내외 상인들은 각종 진귀한 물건을 가지고 흥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아라비아 상인에서부터 왜에 이르기까지 외국 상인들이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고 지원을 해주는 국가는 고려와 송나라 정도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고려의 팔관회를 통해 부족한 물자를 받을 수 있었고, 고려는 중계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얻어 부강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고려는 팔관회에 참여한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고려라는 발음이 어렵다 보니 꼬레(CORE) 또는 꼬레아COREA)로 알려지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KOREA로 불리고 있다. 이때 알려진KOREA는 고려 시대에 이어 오늘날에도 많은 외국인이 좋아하고 찾아오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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