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호 Apr 19. 2022

서자로 왕이 되다

명종에게는 친아들 순회세자가 있었으나 오래 살지 못하고 13세의 나이에 죽었다. 이후 명종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가 없었다. 젊은 나이였지만 자주 아프던 명종이 하루는 중종의 아들 덕흥군의 세 아들 하원군, 하릉군, 하성군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명종은 이들에게 자신이 쓰고 있던 익선관을 내주며 한번 써보라고 권했다.      


덕흥군의 세 아들이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명종은 “너희들의 머리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보려고 한다.”라며 안심시켰다. 그제야 장난이라 생각한 하원군과 하릉군은 익선관을 머리에 써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차례였던 하성군은 “임금께서 쓰시는 것을 신하가 어찌 쓰겠습니까?”라며 익선관을 머리에 쓰지 않고 명종에게 갖다 바쳤다. 명종은 다시 이들에게 임금과 아버지 중 누가 중요한지를 물었다. 두 형제와는 달리 하성군은 “임금과 어버이는 비록 같지 않으나 충효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라며 성숙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때를 계기로 명종은 하성군을 눈여겨보았다.     


1565년(명종 20년), 명종이 몸이 아파 자리에 눕자 영의정 이준경이 명종에게 순회세자가 죽은 이후로 세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여러 조카 중에서 후계자를 선택해달라고 청했다. 명종은 누구를 세자로 삼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하성군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하성군은 명종의 병시중을 들면서 명종이 정해준 관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2년 뒤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명종의 병이 위독해지자, 이준경이 왕비 인순왕후를 찾았다. 인순왕후는 다음 왕을 누구로 결정할지를 묻는 이준경에게 하성군을 왕으로 즉위시키라고 했다. 이에 이준경은 다른 관료들과 함께 명종을 찾아가 하성군을 다음 왕으로 하겠다고 아뢰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종은 숨을 거뒀다. 관원들은 궐 밖에 사는 하성군을 왕으로 모시기 위해 하성군을 찾아갔으나, 하성군은 모친상을 치러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은 왕이 될 능력이 없다며 왕위를 거부했다.      

그러나 신하들이 계속 왕으로 즉위해주기를 요청하자 하성군은 그제야 궁으로 향했다. 이때 하성군을 따라가며 출세를 바라는 무리가 많았다. 따라오는 이들이 하성군을 도와준 사람들이니 공신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이준경은 이들의 이름이 적힌 두루마기를 모두 불태워 문제의 화근을 없앴다. 명종의 뒤를 이은 하성군은 조선 최초 방계 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선조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발해의 진짜 멸망 원인은 뭘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