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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Jul 12. 2022

조선시대 투기는 여성 억압수단

조선시대 투기에 관련된 기록은 남성보다 여성과 관련된 것이 더 많다. 그런데 유독 성종 때 여성의 투기로 인한 범죄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여성의 음문을 갈라 죽인 뒤 강에 버린 사건 이전인 성종 5년(1474년)에도 참봉 신자치의 아내가 투기로 계집종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참봉 신자치의 아내 이씨는 남편이 계집종 도리와 간통하자, 분을 참지 못했다. 이씨는 어머니와 함께 도리의 머리를 깎고 매를 쳤음에도 분이 가라앉지 않자, 도리의 가슴과 음문을 빨갛게 불에 달군 쇠로 지졌다. 얼마나 심하게 도리를 때리고 불에 지졌는지, 몸에 붙어있는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도리가 고문으로 인해 살기 어려워보이자 이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흥인문 밖 산골짜기에 도리를 갖다 버렸다.


이처럼 성종 때 여성의 투기로 인한 사건이 많은 이유는 국가가 성리학을 강조하며 여성의 권리를 축소하고 억압했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기 전인 조선 초의 여성은 어느 정도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여성도 재산을 보유할 수 있었고, 재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태종 때 영돈영부사 이지가 과부와 결혼하자, 많은 관료가 이지의 탄핵을 요구했다. 그러나 태종은 배우자를 잃고 홀로 된 남녀가 결혼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며 앞으로는 이를 문제 삼지 말라고 하였다. 이처럼 고려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여성들에게도 어느 정도 자유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성리학이 뿌리를 내리는 성종 때부터 여성은 강력하게 억압받기 시작했다. 성종은 자신의 아내였던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고 사약을 내려 죽였다. 그리고 당대 많은 관료가 간통으로 엮일까 벌벌 떨었던 어우동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벌을 내렸다. 왕실 종친이던 이동과 혼인한 어우동(?~1480)이 관료 이란, 이기와 간통했다는 고발이 접수되자 의금부는 진상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어우동이 이란과 이기 외에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남성과 문란한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의금부는 어우동에게 장 100대에 유배형 2,000리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종은 의금부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어우동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며 처형할 것을 명령했다. 더불어 여성이 재가하거나 절개를 지키지 못하면, 자손인 아들과 손자가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하는 재가 금지법을 《경국대전》에 명시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투기를 가문과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불행의 근원으로 여겼지만, 정작 투기를 부리거나 간통한 관료와 여성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었다. 조선 법률의 근간인 《경국대전》에 칠거지악이 나와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칠거지악에 관한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 투기에 대해 형벌을 내릴 근거가 없음에도, 조선시대 내내 사회적 통념과 관습에 따라 투기를 부린 여성을 집에서 쫓아내는 등 가혹한 형벌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투기를 부려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칭송받는 사례가 더러 있기도 하다. 중종 때 관료인 홍언필의 아내 송씨는 투기가 매우 심했다. 홍언필이 아침에 물을 떠 온 여종의 손을 잡는 것을 목격한 송씨는 다음날 여종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홍언필이 윤삼계의 여종과 잠자리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빗으로 여종의 얼굴을 긁어 상처를 내고 심한 매질을 가했다.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의지와 기개를 겸비한 여장부라는 평가를 받았다.


성리학의 나라로 불리던 조선시대에도 투기라는 인간의 감정은 엄연히 존재했다. 투기는 왕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고, 남녀 구분도 없었다. 투기로 인해 생명을 잃거나, 관직에서 쫓겨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성리학이 사회에 뿌리내릴수록 투기는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여성은 투기나 부릴 정도로 옹졸하다는 인식이 확산하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낮아졌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투기를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드라마와 영화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투기를 부리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제는 투기를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는 생각을 바꿔야하지 않을까? 인간의 감정을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지 않고 바라보는 세상이야말로 진정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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