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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May 30. 2023

삼국은 왜 일본에 문물을 전수했을까?

고구려·백제·신라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왜를 빼놓을 수 없다. 삼국시대에 왜는 독자적인 문화를 갖지 못하고 우리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삼국도 왜와 손잡았을 때 타국을 견제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고구려의 경우 중국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백제와 신라가 있는 남쪽이 안전해야 했다.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를 향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견제하려면 후방에 있는 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였다. 백제의 경우도 신라를 견제하는 데 왜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왜와 함께 양동작전을 펼칠 경우 신라를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다. 반면 신라의 경우는 일본과 마냥 우호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었다. 고구려·백제와는 달리 바다를 마주하고 많은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라는 정세에 따라 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강경책으로 맞서기도 하였다.      


삼국 중에서 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나라는 백제다. 백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창출하며 성장했고, 왜의 문화 형성과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래서 일본에는 백제로부터 많은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5세기 백제 근초고왕 때 왜에 사신으로 간 아직기는 우지노와 키라츠코 태자의 스승으로 활동했으며, 왕인은 《논어》와 《천자문》을 가르쳤다. 이후에도 꾸준하게 오경 박사·역박사·의박사를 왜에 파견하여 많은 학문을 전수하였다. 성왕은 노리사치계를 통해 왜에 불교를 전파하고, 도자기 제조법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기술들을 전수하였다. 무왕은 관륵을 보내 역사와 천문 지리를 알려주는 등 5~7 세기 동안 왜에 꾸준하게 문물을 전수하면서 우호 관계를 다 져나갔다. 그리고 백제 지배 계층의 일부는 왜에 건너가 지배 계층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고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구려의 경우는 7세기에 집중적으로 왜에 많은 문물을 전수해주었다. 그 이유는 중국 수·당과의 전쟁에 모든 전력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서 당과 연합을 맺은 신라 때문이었다. 전쟁 중에 신라가 고구려를 침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고구려는 왜에 유교 경전과 물감, 그리고 종이와 먹 제조법을 전해주었다. 그중에서도 동양 3대 미술품의 하나로 꼽히는 호류사 금당벽화를 그린 담징이 유명하다. 쇼토쿠태자는 담징을 호류사에 머물게 하면서 채색 방법 외에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맷돌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영양왕 때는 혜자가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고, 영류왕 때 혜관은 일본 삼론종의 시조가 되었다.      


신라의 경우에는 왜와 군사적 마찰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친교를 맺기가 어려워, 백제나 고구려와 비교해 문물을 전수해 준 것이 적다. 그래도 신라는 실용적인 부분으로 배를 만드는 조선술과 제방을 만드는 축제술을 왜에 전하였다. 신라의 조선술은 훗날 왜가 먼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고구려·백제·신라가 7세기 동안 서로 경쟁하고 갈등을 일으킬 때마다 왜는 저울의 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국력이 강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삼국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국가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삼국은 왜에게 많은 문물을 전해주면서 자신에 맞게 활용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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