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낡은 19평 형 빌라
자고 가면 좋은데..
나의 친정집은 오래된 빌라다.
처음 그 집을 살 때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이었단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 그 집은 낡고 좁은 집이 되었다.
난방도 '연탄 - 기름보일러 -도시가스'로 바뀐 거 보면 정말 오래된 빌라다.
친정 집은 20평형 대지만, 지하실까지 포함된 평형이라 실제로는 19평 정도 된다.
방은 3개, 화장실은 1개였다.
그러다 오빠와 내가 직장을 잡고 밖에 나가 살면서 방 하나는 부엌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은 방 2개, 화장실 1개다.
작은 방은 싱글침대와 책상만 있어도 꽉 찬다.
명절에 오빠와 내가 집에 가면 우리는 각각 방에 들어가고 부모님은 거실에 이부자리를 꺼내 주무신다.
어렸을 땐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 집이 오래되고 낡고 그리 좋은 집과 동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결혼할 사람한테 집 어떻게 보여주지. 너무 창피해..'라고 생각할 정도로 40년이 된 19평 형의 좁고 낡은 집은 나에게 콤플렉스가 되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 집을 좋아하셨다.
시댁살이와 아빠가 근무한 벽돌공장 사무실 집에서 사시다가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었다.
처음 입주 당시 동네에서 유일하게 3층으로 된 다세대 빌라였고,
바로 옆엔 둑방길이 있고 강이 보였고,
근처에 버스정류장도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은 40년간 이 집을 지키셨다.
오빠와 내가 커가면서 방 3개는 계속 주인이 바뀌었다.
초등학생 때는 부엌으로 쓰던 방이 내 방이 되었고,
고등학생 땐 안방이 내 방이 되기도 했다.
대학생 되어서는 오빠가 자취를 하면서 오빠방이 내 방이 되었다.
부모님은 그 좁은 집 안을 나를 위해 요리조리 바꿔주셨다.
작년에 내가 결혼을 하고 난 뒤 나는 더 이상 친정집에서 잠을 자지 못했다.
새로운 식구(남편)가 들어오면서 둘이 잘 수 있는 방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명절이며 부모님 생신 땐 항상 친정오빠와 약속하고 며칠밤을 자고 왔었는데,
결혼한 뒤로는 식사만 하고 당일치기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집이 좁아서 어쩌니.. 원래 새 식구 들어오면 더 넓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아이까지 생기면 더 넓어야 와서 편하게 있을 수 있을 텐데 어쩌니..
좀 여유 생기면 이사 생각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있어보자.
이 집 참 좋은 곳이지만 우리 딸 친정 와서 마음 편히 잠도 못하고 미안하네."
ㅡ
부모님이 장만한 첫 집.
아들과 딸을 키운 집.
엄마의 손때와 애정이 가득 담긴 이 집.
아빠 엄마의 30~70대까지 40년의 추억이 담긴 집.
그런 이 집을 엄마는 내가 결혼하면서 떠날까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마음에 왠지 모를 짠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콤플렉스로 여겨졌던 이 오래된 집한테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엄마! 앞으로는 남편 두고 혼자 와서 자고 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