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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별 Jan 26. 2021

코로나 덕에 화장으로부터 자유(自由)를 얻었다

화장 안 해도 예쁘죠?

스킨 - 에센스 - 로션 - 크림 - 선크림 - 파운데이션 - 쿠션 - 파우더 팩트 - 콧대 음영 - 눈썹 - 아이브로우 - 뷰러 - 아이라인 - 마스카라 - 턱 쉐딩 - 립스틱


이 모든 걸 다 하려면 아침에 30분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



나는 화장을 열심히 하던 직장인이었다.

삼십 대 중반인 나에게 화장은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내 자존심을 계속 건드렸다.

매일 마스크를 쓰게 됐고, 시간을 들여 한 화장은 마스크로 인해 헛수고가 되기 시작했다.

한 여름에는 마스크 안에 땀으로 가득 차버렸고, 거기에 마스크로 인해 생긴 줄 자국은 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 아침 화장을 하고 출근하던 나는 한 가지 대안을 생각했다.

화장품 수를 줄이자

나는 파운데이션과 콧대 음영, 아이라인, 턱 쉐딩을 과감하게 빼버렸다.

이것만 안 해도 5분 정도 줄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좀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아이브로우랑 마스카라도 빼버렸다.

나는 아침에 10분은 더 잘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는 마스크에 묻는 파운데이션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거래처와의 점심 일정이 있을 때는 화장품 쿠션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마스크로 인해 얼룩덜룩해진 내 얼굴을 보고 상대방을 더 신경 쓰이게 할 수는 없기에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화장을 고치곤 했다. 은근 번거로운 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 두기가 격상되었고, 나는 대면으로 진행되는 일정은 미루거나 유선으로 처리했다.

거의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로 일을 하는 직업이기에 화장의 필요성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다 작년 가을쯤부터는 또 한 번의 마음의 결심을 했다.

쌩얼만 간단하게 커버하자! 팩트 1분, 뷰러 10초. 끝!


20대의 어린 직원은 마스크 있는 부분은 제외하고 코 위로만 화장을 한다고 했고, 내 옆에 앉은 후배는 이미 쌩얼로 다니며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직 쌩얼까지의 용기는 없었다.


겨울이 되었고 거리 두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작년 마지막 주는 회사 Office Closing이라 출근할 일이 없었다.

나는 집콕을 하며 쉬는 동안 기초화장 외에는 아무것도 안 했다.

너무너무 편하고 좋았다.

클렌징도 쉬웠다. 리무버 없이 그냥 세안제로 쓱쓱 거품내서 닦으면 끝이었다.

신세계였다.

솔직히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귀찮다.



2021년 1월 4일. 어느덧 기나긴 휴일이 끝나갔고 출근하는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소띠인 나는 신축년(辛丑年)을 맞이하여 나에게 자유(自由)를 선포했다.

쌩. 얼.로 가자!


이날 이후로 나는 회사 직원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 웃으면서 말한다.
"저 화장 안 해도 예쁜 거 알아요. 너무 청순하게 생겼죠? 호호호~"


나는 이제 외모가 아닌 내면을 더 멋지게 채워나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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