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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ade Not Born 11화

강한 전투력은 건강한 가정에서 시작한다.

제2의 군인, '군인가족'의 삶

by CalmBeforeStorm

군인의 삶을 논하려면 '군인가족'을 빼놓을 수 없다. 필자도 작년에 결혼을 하였고 올해 4월에는 딸을 새로운 가족으로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내와 곧 태어날 딸도 군인가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직은 군인가족이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이 많이 있기에 가장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마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직업군인들이 항상 가슴속에 품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오늘은 군인과 군인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다.


군인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군인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특별하다고 해서 어떤 혜택이 주어지거나 특권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군인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많은 것을 낮춰야 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군인가족의 범위에는 주로 직계가족인 부모님과 자식 그리고 배우자를 의미한다. 군인가족은 군인은 아니지만 군인과 유사한 제약사항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군인가족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순간에는 내 가정보다 군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언제든지 국가가 필요로 한다면 사랑하는 내 남편, 아내, 아들, 딸을 보내야 한다. 필자도 지난 10년 이상을 현역 군인의 삶을 살아왔지만 군인가족의 삶은 때로는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삶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곤 했다. 분명히 같은 하늘 아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다른 생각과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대부분의 군 관사가 위치한 지역은 민간사회와 많이 떨어져 있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와 경계선으로 드리워진 군 관사 생활의 공기는 사회의 그것과 결이 다르다.


격오지 생활의 어려움

격오지 (隔奧地)란 도시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의 깊숙하고 외진 지역을 말한다. 혹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군부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가? 군부대는 그 임무의 특성상 산악지대, 해안, 도심과 떨어져 격오지에서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군 관사는 부대 근처에 위치한다. 현역군인과 함께 거주하는 군인가족들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과 주거생활, 소비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필자가 2차 중대장 임무 수행했던 강원도 전방지역은 주변에 병원에 가려면 기본적으로 차량으로 30분 이상을 이동해야만 했다. 혹시나 저녁에 아이가 아프거나 하면 제대로 종합병원은 그보다 더 멀리 위치해있으므로 난처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 유지되었던 '20년도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했다. 임신 초기부터 출산 전까지 남편이 한 번도 산부인과에 동행하지 못한 이야기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전방지역에서 생활하면 교통 및 생활여건이 많이 불편한 텐데 남편이 장기간 훈련이라도 나가면 나갈 경우 홀로 독박 육아를 하는 가족들도 많다. 그래서 군인들은 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맛본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다. 격오지에서 교육은 도시와는 전혀 다른 환경적 특징을 갖는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도 마땅한 학원 하나 없는 지역이 많고 무엇보다 이사할 때마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경우도 많다. 군 자녀들은 잦은 이사로 주로 친한 친구들 대부분은 같은 처지에 있는 군 자녀들이다. 부모의 근무지에 따라 몇 번이고 계속 이사를 반복하여 고향에 대한 이미지는 점차 희미해져 간다. 군인 자녀들은 깊은 친구관계를 만들기 어렵고 잦은 전학으로 인해서 성인이 되어도 동창회 모임에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어려움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1년에 두 번있는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포기해야 한다. 필자도 약 8년간 장교로 복무하는 기간 동안에 인천, 화성, 이천, 계룡, 장성, 인제, 양구 등 수많은 근무지를 돌아다녔다. 대위 지휘참모 교육을 받았던 기간을 제외하고 명절 연휴 간에 단 한 번도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뵐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물론 정식으로 휴가명령을 통해서 고향에 내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녹색 견장을 하고 있는 지휘관(자), 부대의 주무 참모로서 연휴 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또 명절 연휴기간은 공휴일로서 당직근무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혹시 '17년도 10일간의 황금 추석 연휴를 기억하는가. 당시에 필자는 3번의 당직근무에 투입되고 추석 당일 부대 합동차례에 참석 및 업무 준비차 출근하다 보니 연휴가 끝나 있었다. 남편이나 아내를 두고 남겨진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진 격오지에서 홀로 친정이나 시댁을 찾아가기로 쉽지 않다. 군인과 군인가족이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된다. 가족들도 보기 힘든 상황인데 친구 및 친지들은 어떻겠는가. 만약 주변에 군인이나 군인가족(배우자)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그들을 만난 것이 언제인가 떠올려 보라. 어쩌면 나도 가족들에게 군인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으로 많은 희생을 강요하지 않았나 되돌아본다.


잦은 이사에서 오는 스트레스

직업군인의 대표적인 특징은 잦은 부대이동에 따른 이사라고 할 수 있다. 이사는 개인의 삶을 기존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복잡한 과정이며, 동시에 이 과정에서 개인뿐 아니라 가족들의 전반적인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준다. 이사로 인해 군인 본인 및 가족들이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군 전투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새로운 임무와 근무지는 군인과 군인가족들에게 변화가 임박했다는 신호를 의미한다. 그들은 이사를 앞두고 적절한 시기, 장소, 배우자의 직장, 자녀교육 여건 등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한다. 이 과정에서 함께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배우자와 자녀와 떨어져서 기러기 아빠(엄마) 생활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우리 군의 이사와 가족과의 별거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령의 약 70%, 중령의 56%가 11회 이상 이사를 하였으며, 대령의 약 50%, 중령의 34%가 가족과 별거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거의 주된 이유로는 자녀 교육이 46%, 빈번한 근무지 변경에 따라 이사를 하지 않음이 23%, 배우자 직장문제 11%로 나타났다. (출처 : 문채봉, 군인자녀 지원 정책방향 연구, 2011.6 한국 국방연구원) 만약 이 모든 조건들이 부합해서 함께 이사를 하더라도 군인가족에게 이사는 많은 변화에 적응을 요하는 스트레스 요소로 작용한다.


군인가족 지원을 위한 노력

이 글에서 군인가족들의 애환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년도 기준 직업군인의 숫자가 장교 6.7만, 부사관 13.5만 명으로 약 20만 명 이상의 직업군인이 군 복무 중이다. 그들의 가족인 군인가족을 모두 합하면 수십만 명 이상이 될 것이다. 그들 모두 각자가 처한 환경 속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와 군 차원에서 군인가족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운용 중인 다양한 정책지원 및 서비스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군 맞춤형 출산장려정책, 군인자녀 기숙학사 및 장학금 지원, 관사 및 아파트 지원, 전세자금 대부지원 군 이사화물 수송비 지원, 군 복지시설(PX, 체력단련장, 군 호텔 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정보는 군인가족들의 자체 커뮤니티를(곰신카페, 군 관사 카페 등) 방문하면 더 자세히 얻을 수 있으며 그곳에서 군인가족들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경우도 많다.


군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좋은 미국의 경우 육군 공동체 서비스(Army Community Service :ACS), MWR, Army Team Building AFTB) 등의 제도가 오래전부터 도입되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재배치 지원, 파병 지원, 구직 지원, 아동보호, 레저의 기회 제공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다. 전투준비태세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군인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임을 인식하고 민간 및 정부 주도하에 군 가족들과 관계되는 수많은 연구가 진행하여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강한 군대를 유지하는 미국의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군인가족 커뮤니티는 미국처럼 공식적인 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내부정보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군인가족에 대한 정부와 군 차원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각 군별로 많은 민간기업과 MOU를 통해서 군인가족을 지원하는 사업을 꾸준히 진행 중이며, 군 자녀 교육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20.11.30.) 남영신 육군 참모총장은 "앞으로도 군인 가족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을 추진해 자긍심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생활 여건과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라고 말했다. 출처 : 연합뉴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048009)


강한 전투력은 건강한 가정에서 시작한다.

‘군인’과 ‘군인가족’ 두 단어는 때로 사회의 이방인처럼 조금 멀리 떨어져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와 멀리 떨어져 있는 듯, 그들만의 외로운 삶처럼 서글픔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군인과 군인가족은 희생과 헌신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동시에 군인가족들의 애환은 대한민국의 평화와 튼튼한 안보의 다른 이름이다.


군인가족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기에 군인들이 주어진 임무를 마음 놓고 수행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국민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처럼 군의 강한 전투력은 건강한 가정에서 시작된다. 더 이상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국민들의 지지와 정책적 지원을 통해 군인과 군인가족이 외롭지 않고 긍지와 자부심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표지 배경 출처 : 국방일보 '16.10.10.>

“200일간 소말리아서 해군 우수성 알리고 무사귀환 환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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