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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ade Not Born 10화

무엇이 당신을 몰입하게 하는가?

우리에게 '취미'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by CalmBeforeStorm
“너는 취미가 무엇이니?”
전입신병 면담 간 어김없이 묻는 질문이다.

비단 신병 면담뿐 아니라 부대를 옮기거나, 새로운 지휘관이 예하 부하들과 초도 면담을 할 때도 빠지지 않는 주제다. 취미가 본래 여가시간에 하는 활동이라 타인을 파악하고자 할 때 쉽게 택할 수 있는 질문이라 그런가 보다. 신병들에게 취미를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 앞서 기술한 질문의 배경을 고려해서인지 모범적인 답변들이 나온다. 독서, 영화감상, 음악 감상, 게임, 구기운동, 여행 등... 나는 예상했던 답변을 듣고 초도 면담 기록을 남긴다. <이병 000 - 취미 : 독서>


우리에게 취미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취미를 이야기할 때 ‘취미 = 생산성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 전제가 된다. 내가 하는 활동이 특정 의미를 가진 활동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일종의 심리도 작용한다. 아무런 도움을 되지 못하는 활동이라면 굳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본디 생산성이란 단어는 기계나 장비들에게 사용했었는데, 어느새 인간에게서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바쁜 현대인이 시간적 여유를 내서 하는 활동이니 그 안에서 일종의 보상으로 생산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군인의 취미는 무엇을 가지면 좋을까? 군인은 왠지 익사이팅하고 스포티한 활동을 즐겨야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필자도 취미를 무엇으로 가져야 할까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퇴근하고 뭐하냐는 동료의 질문에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을 하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무엇이든 해보려고 도전을 했었다. 군인은 몸이 좋아야 하니 근력운동과 헬스, 크로스핏 체육관도 다녀봤다. 나도 남들처럼 바디 프로필 사진도 찍고 여름에 바닷가에서 멋진 근육을 뽐내고 싶다고!라고 바랬던 젊은(?) 시절의 취미였다.


생활여건이 좋지 않았던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는 퇴근하고 나오면 주변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진짜로 없다. 작은 병원과 농협 하나로마트도 차로 30분 정도 가야 하는데 이미 말 다했다. 이 시절에는 평생 안 하던 게임도 도전해봤다. 무려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을 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키덜트 오락문화의 대표주자인 콘솔게임의 상징과도 같은 두 게임머신을 둘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그 그룹 안에 포함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만큼 무엇인가로 나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미가 지속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재미와 열정이 뒷받침되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활동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나의 애정도 시들해졌다.


다른 군인들은 어떤 취미를 가졌을까 궁금했다. 주변을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을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서 못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없거나 여건이 안돼서 도전하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퇴근 후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새롭게 도전하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자신만의 취미를 찾아서 꾸준하게 실천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군 복무 간 개인의 취미를 찾아 꾸준히 실천 중인 이들의 사례를 들어보겠다.


취미활동을 즐기는 군인들

1. 달리기를 사랑하는 동기 ‘최’

최는 매일 최소 5km 달리기를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달리기는 개인의 건강증진을 달성할 수 있고 동시에 매년 직업군인으로서 측정을 받는 체력검정상 3km 뜀걸음을 자연스레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는 군인으로서 갖춰야 할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체력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직업과 관련된 취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최’의 체력은 상당 수준이다. 마라톤 완주만 이미 5차례가 넘는다니 달리기를 사랑하는 수준이다. 이런 취미 덕분에 ‘최’는 힘든 미군 교육과정에서 미군 동기에게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는 강인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근력이 강한 것과 달리기를 잘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근육이 빵빵한 미군들도 장거리 달리기는 취약한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그들은 ‘최’를 캡틴 코리아라고 불렀다. ‘최’ 달리기라는 취미 덕분에 타국에서 국위선양을 할 수 있었다.


2. 중국어 공부를 하는 장교 A

인접 동료의 취미 중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사례는 ‘어학공부’였다. 장교 A는 중국어 학습을 취미로 삼았다. 군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전화 중국어’부터, 개인 사비를 들여 중국어 관련 학습자료를 구매하여 개인 여가시간에 꾸준히 중국어 학습을 하곤 했었다. 이렇게 일과 외 시간에 중국어 학습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실력이 많이 늘었고 운이 좋게도 업무에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 군대에서 주로 쓰이는 외국어는 당연 영어다. 다른 모든 외국 언어가 사용되는 빈도를 다 합해도 한국군에서 영어가 사용되는 빈도의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A장교는 취미로 배웠던 중국어를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십 분 활용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에 A는 인천공항 대민지원에서 중국어 통역 지원을 활발하게 했고,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는 개인의 자기 계발과 더불어 군인으로 국가와 국민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적극 일조한 점에서 개인의 발전과 군인으로서의 임무수행 모든 것을 달성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취미다.


3. 철인 3종에 도전하는 부사관 B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부대에서 지낸 부사관 B는 철인 3종 경기를 즐겼다. 군대의 교육훈련에서 체력단련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깨달은 B는 어느 순간에 체력을 본인의 무기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가운데 군인의 기본 자질인 체력을 부지런히 연마했고 지금까지 철인 3종 경기가 취미로 삼고 있다. 사실 민간사회에는 군인들보다 더 체력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대회에 나간다고 B가 항상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대회를 준비하고 참여한 그 자체에 B가 철인 3종을 나가는 목적이 있다. 그 활동이 개인의 만족과 더불어 직업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선순환의 관계를 갖는다. 이는 개인의 취미가 전투력 창출에 도움이 됨과 더불어, 본인의 여가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다.


4. 프라모델을 제작을 즐기는 병사 C

C병사는 입대 전부터 프라모델 제작을 즐겼다. 전입 초반에는 임무숙달이 우선이라 생각해서 전보다 자주 즐길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흘러 상병이 되었을 때, C는 다시 본인이 애정 하는 프라모델을 시작했다. 개인정비 시간에 휴대전화를 사용보다 우선하여 새로운 프라모델을 구매, 조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생활관에서 생활하는 인접 인원들도 C의 프라모델 조립을 처음에는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주변 동료들도 프라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져 함께 조립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C병사는 프라모델을 조립함으로써 개인의 성취감 달성과 더불어 바쁜 군대 일과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창조했다.


취미인가? 자기개발인가?

우리는 앞서 다른 군인의 사례에서 취미를 본인의 업무로 승화시키는 순간을 목격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가 나의 직업에도 도움을 준다니 이 얼마나 생산성이 있는 활동인가! 재미와 보상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궁금점으로 이끌었다. 자기개발과 취미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쨌든 일하지 않는 시간에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데 이 행위를 취미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자기개발(계발)로 봐야 하는가. 둘의 사전적 의미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취미 :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일

자기개발 : 본인의 기술이나 능력을 발전시키는 일


사전적 의미의 취미와 자기개발은 내포한 의미가 다르다. 즐기기 위한 것이 취미라면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자기개발이다. 시간은 인간이 가진 가장 한정적인 재화다. 퇴근 후 주어진 짧은 자유시간에 취미랑 자기 개발 둘 다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Yes다. 어떤 특정한 활동이 취미가 될 수도 있고 동시에 자기개발이 될 수도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필자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취미이자 자기개발인 ‘영어공부’

육사를 가면 공부를 안 해도 되는지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영어공부는 나의 삶에 다양한 주기로 찾아왔다. 막상 영어를 공부할 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왜 공부를 하는가 목적에 따라서 영어는 취미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자기개발이 되었다.


1. 육군사관학교 재학 중에는 졸업요건을 맞추기 위해서 영어를 공부했다. 수능시험 영어는 1등급이었으나 토익은 또 다른 세계였다. 열심히 문제를 풀고 영어를 익히고 점수를 만들었다. (자기개발)


2. 졸업 후에는 해외여행을 자주 갈 수 없는 것을 알았기에 생도 시절 기회가 될 때마다 해외를 나가고자 노력했다. 여행의 목적인 견문을 넓히고 제대로 된 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 언어 영어가 필수였다. 출국 전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여행 계획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했다. (취미)


3. 임관 후 야전에서 복무하면서 업무목적으로 영어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하긴 소, 중위가 부대에서 영어를 사용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굳이 영어를 쓴다면 좋아하는 미드 감상 시 이해를 돕기 위함이었다. 먼저 영어자막을 붙이고 감상 후에 두 번째는 자막을 제거하고 드라마나 영화를 다시 보면 와 닿는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다. (취미)


4. 몇 년 뒤 미국 군사교육 위탁교육에 지원하기 위해서 영어성적이 필요했다. 토익점수만으로는 특목고를 졸업한 동기나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동기들과 견줄 수 없었다. 스피킹이 문제였다. 기회가 될 때마다 미친 듯이 OPIc, Toeic-speaking, TEPS-speaking 시험을 응시했다. 시간도 시간인데 돈이 많이 드는 공부였다. 인터넷 강의도 따로 들었어야 했고 응시료는 할인을 받아도 1회당 최소 5만 원은 넘는 고액의 시험이었다. 합격 후 출국 준비기간에는 아침 6시에 전화영어까지 했다. 여행을 준비하는 것과 달리 업무를 하려고 영어를 학습할 때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자기개발)


5. 언어도 도구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점차 기능을 잃어가는 것을 느낀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에 있어서 읽기-듣기-말하기-쓰기 네 가지 영역을 꾸준하게 단련해야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인생 최고조로 수준이 올랐는데 시간이 지난 요즘은 이전만 못함을 자주 느낀다. 최근 대학원에 입학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유를 찾은 탓인지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이전처럼 시험을 앞두고 있다든지 해외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닌 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어서 나의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에 임하고 있다. Back to the basic의 마음자세로 기본인 단어부터 다시 시작했다. 몇 년 전 구매한 영어단어책에 먼지가 쌓여가다가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다.(취미)


6. 요즘 정말 핫한 클럽하우스에 정말 심취해있다. 그곳에서는 영어가 사실상의 디폴트 값이다. 관심 있는 인 플로 언서들이 개설한 방은 오로지 영어로만 대화가 진행되었다. 똑같은 단어를 영어로 구글에 검색하면 한국어로 검색했을 때보다 10배 이상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앞으로 대학원 공부를 할 때 원서로 된 전공서적이나 논문을 자주 참고해야 한다. 다시 영어가 필요해진 순간이 온 것일까? (자기개발)


나에게 영어공부는 취미이면서 자기개발이었다. 내가 영어공부를 '목적 그 자체' 즐기면 그것은 취미가 된다.

반면 영어공부를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대하면 그것은 자기개발이 되었다. 이는 비단 영어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의 많은 사안들에 해당하는 이치일 것이다. 어쩌면 취미냐 자기개발이냐라는 질문은 목적이냐 수단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아닐까?


무엇이 당신을 몰입하게 하는가?

비록 지금은 잠시 창고에 잠들어 있지만 분명히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도 필자가 강원도 생활을 잘 보내도록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중국어 공부가 군 복무에 도움을 될 것이라 A장교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내가 그것이 좋으니까 했던 활동들이 어느 순간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하다못해 게임 취미도 군 입대 후 게임을 많이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게임중독 병사를 면담할 때 도움이 되었다. ”중대장도 젤다의 전설을 즐긴다.”라고 말하니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라포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 병사와 나의 공통점은 게임을 할 때 즐겁고 그 세상 속에 몰입을 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취미냐 자기개발이냐는 사실은 별로 중요한 고민거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취미가 생산성을 띄는 활동인지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지로 무엇인가 한다는 그 행위 자체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생계와 관련되어있지 않은 특정 활동이 유희를 위함이든지 개인의 발전을 위하든지 상관없다. 그 활동을 하는 배경에는 어떤 동기가 잠재되어있든지 당신은 그것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퇴근 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지만 피곤함을 이겨내고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그것이 지니는 고유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선택이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비슷하지만 또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당신에게 여가시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넷플릭스를 보는 것일 수도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당신의 가슴을 뛰게 만들며, 당신은 어떤 행위를 할 때 가장 몰입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얻는가?” 그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가 아니면 수단으로써 취하는가?


오늘의 주제는 군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한 번쯤 생각해볼 주제다.


<표지 배경 출처 : 국방일보 '18.9.20.>

장병 꿈과 희망이 ‘꿈틀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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