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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재현 Jul 18. 2021

가깝고도 먼 군대(2)

군의 정치개입 비극 : 미얀마 쿠데타

‘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국가고문 아웅 산 수 치와 여당 지도자들을 축출하고 그들을 가택 연금했다. 이후 미얀마 군부는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국방군 총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밝혔다. 쿠데타의 배경은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집권 국민민주연맹 (NLD)이 압승한 ‘20년 11월 총선 결과에 군부의 불복이었다. 사실,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 이전부터 이미 정부에 대한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군에 대한 문민통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1988년 쿠데타에 이어 2021년 쿠데타에서도 별다른 저항이나 무력 충돌 없이 굉장히 쉽고 빠르게 쿠데타에 성공하면서 미얀마의 불안정했던 민주주의 정권은 5년 만에 무너졌다.

[1]

물론, 세계사를 살펴보면 왕조의 변화기 및 국가 변동의 시기에는 군의 정치개입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는 무력을 관리하는 조직이라는 군의성격상 불가피한 일이었을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전통적으로 문신 중심의 문민정치가 지배해온 정치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고려 말기 무인이 권력을 행사한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러한 문민통치의 전통은 조선왕조이래, 더욱 명백하게드러났다. 문관이 각 지역의 행정직을 맡아 병마권을 행사했으며 관채사가 병마절도사를 경직한 것이 그 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도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룩한 전례가 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오늘의 미얀마인에게 그들도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는 희망의 표상이 되는 국가이다. 우리는 왜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에도 이와 같은 슬픈 역사는 반복되는가 고민해봐야 한다. 왜 미얀마의 사례처럼 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군의 책무에 반하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가?  

건전한 민군관계와 군의 정치적 중립

피터피버(Peter Fever)는 「기관이론」(agency theory)을 통해 정부에 대한 군의 태도에 따라 민군관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즉민군관계에 있어서 문제점은 정부의 하위기관인 군의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2]

 그는 정부가 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하여 하위기관인 군에게충분한 권력을 부여하였는데, 군은 그 권력을 상위기관인 정부보다 군 자신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정부를 위협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미얀마 쿠테타 사례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고려말의 무신정권처럼 민과 군의 관계에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존재한다. 바로 건전한 민군관계의 정립이다. 

사무엘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은 그의 저서 「군인과 국가」에서 민군관계의 확립을 위해 “전략적 고려는 정치적 고려에 양보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주장하며 민군관계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정치적 과정을 통해 입안된 정책은 지양해야 할 목표(ends) 이고, 전쟁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수단(means)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정치지도자의 지침을 토대로 민과 군은 국가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군사력 운용 방법 및 필요한 자원 등과 함께토의한다. 이러한 민군 간의 대화는 군사력의 조직 및 운용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를 통해 대통령은 요망되는 정치적 목표를 하달하고 군은 이를 달성하기위한 다양한 군사적 방안을 건의하면서 목표, 방법, 수단 간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지 파악하고 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3]

전술한 대한민국 헌법 제 5조 2항에 따라 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되어야 한다. 헌법에서 이렇게 중립성을 강조한 이유는 군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바탕으로 군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군인의 정치개입 행위를 근절하여 우(愚)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국방력은 국력의 네 가지(DIME) 핵심의 한 축을 담당한다. 국가와 국민이 군에 무력을 부여한 것은 이를 통해 국토방위 및 국민의 안전보장을 이루기 위함이다. 군인은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것에만 전념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목표와 방법, 수단 간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건전한 민군 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건들이 선행될 때 군은 전투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전투력 발휘의 요소에 대해 알아보겠다. 

전투력 발휘의 3요소

인류의 역사에 전쟁의 역사다. 미군은 1775년, 독일연방군은 1955년, 몽골군은 1992년,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은 1948년 8월 15일에 창설되었다. 한국광복군 1940년,남조선국방경비대 1946년 등과 같이 군의 기능을 하는 조직들은 항상 존재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군의 복장 · 무기체계 · 조직 등은 변해도 그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기술의 집약을 통한 무기체계의 혁신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본다. 1805년의 영국의 넬슨 제독 에게는 함선이, 1940년 북아프리카의 롬멜 장군에게는 전차, 1991년의 사막의 폭풍작전에서 슈워츠코프 장군에게는 폭격기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항상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어떻게 기술을 운용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전사도 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년 7월 19일 ~ 1871년 5월 10일)은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프로이센과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 제2제국과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당시 프랑스군은 소총 분야에서 프로이센군에 비해 훨씬 우세하였다. 프랑스군이 사용했던 채스폿 소총은 프로이센군의 드라이제 소총에 비해사거리와 정확도가 훨씬 높았다. 하지만 화기의 우세가 전투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프랑스군은 이러한 화기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을 심도깊게 연구하지 않았다. 소총의 낮은 정확도와 사거리로 인해 정면공격이 불리함을 알고 있던 프로이센군은 먼저 포병의 공격준비 사격으로 밀집된 프랑스군에게 최대한 피해를 강요하고 그 이후 우회기동 또는 포위기동을 통해 프랑스군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프랑스의 장교들보다 더 나폴레옹 전투를 심도 깊게 연구했던 프로이센 장교들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기동전을 적용하여 적 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령, 적을 포위 격멸하였던 것이다.

[4]

 어떻게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Nebel des Krieges를 통해 전쟁의 본질을 설파했다. 전장의 안개로 번역되는 이 개념은 전쟁이 얼마나 불확실한 특성을 보이는지 잘 나타낸다. 이러한 본질을 가진 전쟁은 변화하고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서 기술이나 정책 또는 제도의 발전만으로 전쟁의 승리를 단정 짓기 어렵다.   

2차 이라크전을 살펴보면 미군은 2003년 3월 20일 전쟁을 시작하고 부시 대통령은 2003년 4월 16일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승리를 공언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안정화 작전에서 큰 피해를 입으며 고초를 겼었다. 결국, 2011년 12월 15일 미 국방부는 이라크전을 공식 종전을 선언했다. 전투에 승리가 반드시 전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만을 신봉하고 전술적 승리에 과몰입하면 전략적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특정 단일 요소 하나로는 전쟁의 승리를 단언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필자들을 포함하여 군에는 이런 고민을 깊이 한 군인들이 있었고 공통으로 생각 하는 강한 군대를 육성하는 본질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이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 전투력 발휘의 3요소>

전투준비는 싸우는 군대가 응당 해야 하는 최종 목표이고 과정이고 상태이다. 전시 전쟁터가 될 전투진지를 정비하고, 전시 작전계획을 발전시키는 등의 행위가 해당한다.

교육훈련은 싸우는 대로 훈련하고 훈련한 대로 싸우기 위해 전투력을 배양하는 활동이다. 군대 하면 떠오는 기본적인 훈련에 대한 이미지가 모두 교육훈련이다. 부대관리는 이 두 가지 요소를 가능케 하는 모든 것의 기본이다. 시설관리 병력관리 등이 부대의 제반 업무가 해당한다. 

위 3요소는 때로는 중복되기도 하며 상호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결코 제대로 된 전투력 발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앞으로 전투준비·교육훈련·부대관리, 이 세 가지 주제를 이어지는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1]

 2021년 4월 12일 기준 미얀마 군이나 경찰에 의해 사망한 민간인은 어린이 등 최소 707명, 구금된 사람은 최소 3070명이고 그 피해는 계속 늘고있다.




[2]

 Armed Servants Agency, Oversight and Civil-Military Relations (Peter Feaver, 2005) 




[3]

 생각의 무기 제4장 작전술의 진화(김태형, 이동필, 2020) p.147




[4]

 생각의 무기 제4장 작전술의 진화(김태형, 이동필, 2020)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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