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후회를 잘하지 않아요. 후회를 하기보다는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고 미래의 실수를 줄이는 자는 모토를 가지고 있거든요. 쓸데없이 내가 1억이 있다면 같은 망상도 같은 이유에서 하지 않아요. 그런데 요 근래 '타임머신' 개발의 시급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답니다.
상품 디자인을 하게 되면 작은 실수도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현물'이 되어버리면 고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 만드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글쎄 제가 현물제작에서 실수를 한 거죠. 회사에서는 나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 책임을 지게 되지만, 회사 밖 혼자 일하게 되면 오롯이 나만의 책임이 된답니다.
그리고 실수라는 놈은 어렵거나 낯선 곳보다는 '익숙한' 곳, '쉬운' 곳에서 발현됩니다. 발현이라는 말이 맞을 거예요. 스스로 느닷없이 생겨나거든요. 너무 익숙한, 몇 번을 확인한 그곳이 허점을 만들어 실수를 태어나게 만든답니다. 그런 실수가 최근 작업한 작업물에서 나타났었어요. 무려 두 번이나 확인했던 그곳의 글자가 단 한 글자가 잘못된 것이지요.
- 눈 앞이 하얗게 된다.
라는 소설 속 문구는 허구가 아님을 알게 된 날이었어요. 일 순간 눈 앞이 하얗게 변하며 나는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에 뚝떨어진 느낌이었어요. 홀로 방안에 서서 낯선 세계와 조우를 하며 차분히 현실의 나를 끌어와야만 했지요. 실수를 알리는 짧은 꾸지람 통화를 마치고, 그 날 따라 아침부터 말끔히 청소한 거실의 한가운데 대자로 엎어져 힘없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어요. 마침 걸려온 남편 전화를 받을까 고민하다 받았지요. 남편님은 심상치 않은 제 목소리에 사정을 물었고 힘없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차분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답니다. 울지는 않았어요. 내 실수가 확실한데 우는 건 비겁하게 느껴졌거든요. 그저 울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지요. 남편은 기운 내라고 토닥여주었어요. 그리고 기계(맥북 같은 거)는 잘도 사주지만 옷 사는 것에 이해 못하는 남편이 '어서 밖으로 나가 옷 쇼핑이라도 하라'고 말로 떠밀어 주더라고요. 하지만 실수를 한 인간이 그 실수를 수습해야겠지 않겠어요. 그래서 다시 일하러 갈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바닥에 엎어져 그 실수의 찰나에 대해 생각했어요. 너무 자신만만해하면서 작업물 저장했던 내 손가락을 바라보면서요. 후회라는 것과 멀게 사는데, 그 시점으로 돌아가 내 뒷머리 끄덩이를 잡고 '너 여기 여기 고쳐야 해. 그렇게 고생해서 작업했는데, 단 한 번의 실수로 요렇게 만들 거니?'라고 묻고 싶었어요.
그 헛된 욕망. 이 세상에 타임머신을 발명해야 한다는 욕망을 가까스로 누르며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컴퓨터 앞으로 나아갔답니다.
그리고 다짐했어요. 스스로 단명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주변 사람 혹은 같이 일하는 사람의 수명까지는 단명시키지 말자라고요. 정말 나쁜 짓이죠. 그러니 앞으로는 더욱 꼼꼼하게 일하려고요. 제대로 자아성찰, 자아반성, 자아 학대, 자아성장 등등 여러 가지 일을 단 하루 만에 겪어보았더랬습니다. 트라우마가 아니라 성장! 히힝.
덧, 아 그리고 같이 일한 담당자분의 '이 정도 실수는 (어쨌든 지금은 시간이 지난 일이고 마무리는 잘되었으니) 괜찮다'라는 사함을 받고 정신적 충격은 나아졌습니다.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