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위에 누운 아이의 발을 들어 내 코로 가져왔다. 말랑거리는 발가락 사이로 옅은 땀냄새가 난다. 한참을 킁킁대다 어린아이의 상징인 '말랑거리는 발바닥과 조그맣고 귀여운 발가락'을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아직 무른 나의 발을 보고 '발이 참 보드랍다'며 당신의 발과 비교해 말씀하셨다. 엄마의 발바닥은 나의 것과 다르게 딱딱했고 굳은 살도 많았다.
그때 알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얼마나 고단한 삶이 되면 발바닥이 저리 단단해지는 걸까
10대 후반이 되었지만 나의 발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성인이 되어 온전한 성인의 몸무게가 되자 차츰 발은 단단해졌다. 새로 신기 시작한 구두 탓도 있으리라.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녔다. 식사는 전철로가는 길의 김밥한 줄이였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이유로 왕복 5시간이라는 출퇴근을 한적도 있다. 강남쪽 회사를 다닐때에는 디자이너랍시도 하이힐을 넘어선 킬힐을 신고다니기도 했다. 어느새 여기저기 굳은 살이 생기고 나의 발은 갈수록 단단해졌다.
그러나 엄마의 발만큼 단단해 지진 않았다. 마트에서 판매사원 일을 하셨던 엄마는 늘 서서 일을 했고, 나는 출퇴근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의자에 앉아서 일했으니, 시간이 지나도 엄마의 발만큼 단단해지지 않았다. 같은 나이대의 40대 초반 선상으로 비교해보아도 엄마의 발은 참으로 단단한 굳은 살이 많다. 그건 엄마와 나의 삶의 무게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리라.
나의 지론 중 하나가 '남이 팔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보다 내 손톱의 가시가 더 아프다'이다. 아무리 엄마여도 나는엄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할 생각도 없다.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그저 어렴풋이 엄마와 나의 발바닥이나 비교하면서 짐작하고 작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뿐이다.
다시 아이의 발바닥에 코를 파묻고 깊이 숨을 쉬어본다. 아이가 고운 자리만 다니거나 발이 언제나 부드럽고 말랑거리길 바라진 않는다. 나보다 더 단단하고 굳건히 설 수 있는 발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그 아이의 선택이길 바란다. 삶에 내몰려 힘들게 가시밭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취하고픈 것을 찾고 나아가면서 단단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여자아이'가 아니라 그냥 '아이'로써 '한 사람'으로써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바래본다.
우리가 아이들이 언젠가 이 글을 볼 수 있고 공감하기를 바라며.
*본문사진은 unsplash의 Nagesh Badu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