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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l 03. 2022

머리카락을 잘랐다.

소중한 당신

 여름이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 원래는 초복에 삼계탕이라도 먹어야 여름이 왔구나 하며 더위에 대한 준비를 해보는데, 봄이 왔다 해서 대문을 열어보니 여름이 새벽 배송으로 와있더라. 숨이 막힐 듯 일렁이는 더위에 머리를 평소보다 조금 짧지만 적당하게 쳐달라 했다. 숙덕숙덕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가벼워지기도, 개운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다 깎고 나면 마지막 확인 의식이 남아있다. 바로 후회에 거울 앞에 서보는 것이다. 머리가 너무 짧은 것 같다는 생각에 어김없이 후회란 게 밀려온다. 항상 깎고 나면 후회란 것을 하면서도 다음, 그다음에도 똑같은 요구를 한다는 것에는 분명 붕어에 유전자가 흐르고 있음에 분명하다. 처음에 어색함은 싫지만 다가올 자연스러움을 알기 때문인 것일까?


 순간 아주 어렸을 적 옷이란 옷은 죄다 크던 시절이 떠올랐다.


"조금만 더 크면 딱 맞을 거니깐 지금은 그냥 입어"

"엄마 이건 너무 커요~"

"크긴 머가 커, 다 이렇게 입고 다녀~  이쁘구먼"

"......"


팔과 다리 끝에는 항상 1.5배 정도에 여분이 샤프심처럼 들어 있었고, 품은 커서 오버핏이 아니라 오바핏 했다. 당시에는 정말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친구들은 다 그렇게 오바핏으로 입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아니다 싶은 것도 여럿이 같이 하면 나는 우리가 되고, 우리가 모여 유행이 되고, 머 그랬던 것 같다. 한바탕 뛰기라도 하면 봉산탈춤을 언제라도 출수 있는 의상이 갖춰지곤 했고, 친구들끼리 서로 춤사위를 뽐내며 숨 넘어가듯 깔깔대며 웃어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거울 속에서 어색하는 나에 모습과 그런 나를 바라보는 불안한 모습에 미용사까지, 잠시 동안에 정적이 흐르고 돈을 지불하고 미용실까지 나가야 모든 상황은 끝이 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어색했던 나에 마지막 거울 속 모습이 계속해서 맴돈다. 주차되어 서있던 차들 옆에 서서는 선팅 된 유리문을 거울삼아 이리저리 만져본다. 하지만 뻗친 머리는 대쪽 같을 뿐 다른 방도는 없었다. 너무 부끄러워 모자라도 쓰고 싶었다.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수도 없이 스쳐 지나갔다. 내 머리를 보는 건가 싶어 시선을 의식했지만, 누구 하나 내 머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나에 어색함과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어쩌면 나는 시간이 지나 머리가 조금 길어지기 시작하면 내가 많이 봐오던 머리 길이가 익숙해서 그런 길이가 적당하다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머리가 길어진 나를 가장 많이 봐왔기에 익숙함이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 짧게 잘라도, 당시에 어색함은 크지만 중간 정도 기른 머리 길이에 시간이 길게 느껴지곤 했나 보다. 내가 기억력이 짧아서 매번 놓치고 있던 요구사항이 아니었다. 좋았던 시간, 짧지만 어색한 시간을 감내하는 듯 내 몸은 반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지금 사는 삶이 나에게 맞지 않아 어색하고, 버겁고,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에 작음을 알고, 삶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종국에는 내가 컸을 때 꼭 맞을 것임 또한 알고 있다는 것과 같다.


오늘도 거울을 보며 나와 삶에 무게를 저울질해 본다. 중간 정도가 어디서부터 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하지만 삶이 나와 꼭 맞지는 않더라도 어제보다는 더 나은 하루를 살고 있다는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기에 그 언젠가를 위해 입술을 깨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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