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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l 05. 2022

딸아이에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만큼

소중한 당신

 요즘은 딸아이에 성장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름을 실감한다. 키와 몸무게도 그렇거니와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시도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즐기기까지 이 모든 속도에 가속이 붙는다. 맵다며 못 먹던 김치를 이제는 능숙한 젓가락질로 밥 위에 처억 얻어 하안~입 크게 먹으며 맛을 음미하질 않나, 워터파크에서는 물이 무섭다며 기어만 다니던 아이가 이제는 누워서 헤엄치는 것을 즐기기 바쁘다. 얼마 전 깨끔발로 겨우 닿던 초인종을 원래 닿았다는 듯 시크한 표정으로 누르는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 어마어마한 6살 아이가 우리 집에 살고 있다.


나와 와이프는 나이란 것을 먹고, 체력이란 것을 토해내나 보다. 쉬어도 쉬어도 쌓여만 가는 피로에 한숨만 늘어나고 있지만, 딸아이는 날다람쥐처럼 요리조리 날아다니기 바쁘다. 집안은 생기와 정적이 공존하며 묘한 기운마저 감돈다. 딸아이가 만약에 아들로 태어났었다면 우리는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지 않았을까 하며 와이프와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 댁에 놀러를 갔었다. 자주 들리는 곳이고 우리 집처럼 익숙한 곳이지만 부모님에 흰머리와 주름만큼은 어색하기만 하다. 아빠는 무릎이 아프셔서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힘들다 하시고, 엄마는 꽃가루만 날리면 숨을 쉬지 못하실 정도로 알레르기가 심해지셔서, 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꽃구경은커녕, 꽃을 피해만 다니셔야 한단다. 손녀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아지고 있는데, 정작 부모님은 할 수 있었던 일을 나이와 맞바꾸고 계셨다.


가만히 돌아보니, 우리 딸아이가 커가며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것과 부모님이 늙으시며 할 수 없어진 가짓수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딸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들으시며 마냥 좋아하시던 부모님에 모습과, 이제는 무언가를 더 이상 하기 어렵다는 말을 조심스레 내어 놓으시던 모습이 뒤섞이며 자식을 위하는 마음과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왔다. 뜨겁기도 하고 시리기도, 찡하기도 하더라.


그저 자신에 존재 자체가 자식에게 걱정으로 남겨지지는 않을지 노심초사 걱정하는 마음, 세월 속에 무뎌진 몸과 마음에 꺾여버린 의지가 혹여나 들키기라도 할까 봐 묻지도 않은 건재함을 애써 자랑하시는 모습에 안타깝기만 하다. 효도는 애가 크면 하겠다던 철이 없던 나에 생각은, 부모님에 젊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한참을 지나쳐 버린 듯했다.


손녀가 이제는 줄넘기도, 뜀박질도, 수영도 할 수 있다고, 엄마 아빠도 이제는 손녀와 손잡고 같이 즐기며 다니자고 말씀드려 봤다. 하지만 같이 할 수 있을 때가 되니 같이 할 수 없을 때가 오는 모순에 그저 허탈한 웃음만이 돌아올 뿐이다.


딸아이에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만큼 부모님에 걸음걸이는 느려지더라.

너무 빨라지는 딸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나 아직 늦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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