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 비 그리고 바람 Jul 09. 2022

내가 단톡방을 싫어하는 이유

소중한 당신

 나는 단톡방이 너무 싫다. 가뜩이나 문자인지 광고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텍스트들로 가짜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탓에 나에 스마트폰은 양아치 기질이 다분한 양치기가 된 지 오래다.


한 번씩 단톡방에서 울어대는 진동 알림은 숨을 쉬어야 하는 타이밍마저 앗아간다. 알림이 끝나면 지금 머릿속에 떠돌고 있던 생각이나 하던 일을 정리하고 확인을 하는 편인데, 끊이지 않고 울리는 알림은 이도 저도 못하게 만든다. 정말 급한 문자인가 싶어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열어보지만 대화에 반은 “ㅋㅋㅋㅋㅋ”이고 대화에 반은 깨방정 이모티콘들 뿐이다. 너무 심하다 싶어 알람을 껐더니, 전화가 온다. 자기 말 무시하는 거냐고, 뒤늦게 대화 내용을 봤더니 자기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고 단톡방에서 공개처형까지 해놨더라. 누가 누구를 탓하는 것인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단톡에 알림이 울려대기 전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메모도 하고 있던 중에 당한 텍스트 뺑소니는 십 분 이상 정리해 두었던 생각에 뼈대마저 부러뜨리더라. 그냥 그 친구도 미웠지만 문자 자체에, 단톡방 자체에 화가 치밀었다. 일단은 미안하다고 단톡방에 가식 몇 번 떨어주고 촐랑거림으로 응대한 후 그 녀석을 조용히 손절 쳤다. (아직도 가끔 저나가 오지만 받지 않고 있다.)


어쩌다가 우리는 자기 시간마저 뺏겨야 하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일까. 스마트폰이라는 것은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와도 같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에 공간을 손 안으로 가져다주며, 보고 싶은 사람에 입과 귀를, 심지어 모습까지도 빌려오기도 한다. 정말이지 스마트폰을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조차 시간낭비일지도 모른다. 소름이 돋는다. 반면 스마트폰에 이러한 기질 때문인 것일까? 우리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편리함을 넘어 안이하게 대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세상을 향한 안이함에 대가는 그 작은 스마트폰 세상 속으로 에 속박을 가져왔다. 자신에 집주소와 차 번호, 부모님에 전화번호까지 모든 것은 폰이라는 세상 속에 있기에 머리는 자신에 본분마저 내어주고 말았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잠시라도 폰이 없어지기라도 하면 자신에 자아라도 잃어버린 양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저주에 빠져버린 우리는 그 대가가 너무나도 혹독했다. 자신을 대신하는 것은 자아가 폰으로 대체되어 버렸고, 읽지 못함을 읽지 않음으로, 몰랐음을 알고도 모른 척으로 대신되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좋아요, 팔로우, 구독을 하지 않아도 미끄럼 한번 같이 타면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안녕 한마디면 서로에 친구가 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손바닥 만한 요물에 영혼을 팔지 않아도 되었기에 행복에 무게가 더 무거웠으리라


지금도 눈을 뜨기 무섭게 속속들이 도착하는 알람들을 확인하며 지우고 무시하기를 반복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글에 온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