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기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매일 쓴다는 게 이렇게나 어렵다.

굳어가는 몸에 비해 마음의 변덕은 잦아진다. 뭘 쓰고 싶어도 시시각각 변하는 생각의 흐름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매일 글 쓰는 사람이 쓸법한 글을 흠모하던 나. 그런 내가 요즘 글만 보면 잠이 오고, 쓰기만 해도 머리에 김이나며 두통이 생기는 기묘한 경험을 해야 했다. 흡사 글과 정 떼려는 사람 같았다. 살갑게 오는 글 밀어내며 손사래 치는 듯한 내 모습에 화가 날 지경이다.


이번주는 글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이사 후 겪는 후유증인지 몰라도 생각의 축척이 일어날 새가 없었다. 눈뜨면 남의 집에 자는 듯한 어색함과 마주해야 했고, 나는 누구인가를 몇 번씩이나 되뇌어야 현실을 감각하는 기관이 제구실을 시작했다. 바쁜 출근길, 지하주차장 출구를 찾으며 한참을 배회해야 했고, 초행길 나서듯 길을 더듬어야 겨우 출근할 수 있었다. 새로움이 주는 낯섦은 머릿속에 빨대를 꽂아 내 남은 감각까지 모조리 빨아 댔다. 길 잃은 아이 같았다. MBTI 앞자리가 E에서 I로 바뀌어서 그런지 생각은 좀처럼 밖으로 나가 놀 의향이 없어 보였다. 나만 부여잡고 늘어지더니 소심함만 늘어갔다. 이사만 하고 나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며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막상 하고 나니 무기력만 늘어갔다.


낯섦과 어색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깜깜한 밤이 찾아왔다. 모든 것이 수줍었던지 하루도 무척이나 짧다. 이사한답시고 가전이며 집기 대부분을 버렸다. 그전까지 잘 사용하던 물건도 새 집으로 이사 간다는 생각에 양육 포기 각서를 썼다. 버림 뒤에는 어김없이 쓸쓸함이 찾아오는 법. 지금 나는 마음도 집도 휑해지는 벌을 받고 있는 듯하다. 대화를 해도 메아리치듯 돌아오는 울림이 마음의 황량함만 부추겼다. 이 와중에 밤만 되면 글을 요구하는 채무자들이 머릿속을 찾아온다. 복잡한 내 생각에 득시글거리며 떠들어 대는 통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 무어라도 써서 보내고 싶지만 글은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엉덩이로 쓸 수 있는 수준의 집중력도 안 되는 상황. 한 시간 써도 몇 줄 간당간당. 그 몇 줄 마저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낙서들뿐이다.


예전에는 생각이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으면 글을 썼다. 글에다 생각 한 모금 따라 내면 글은 내 잔에다 위로를 부어줬다. 글과 밤새도록 잔을 부딪치며 불공평한 삶을 욕하기도 했다. 그때는 5일장 열리듯 생각을 모아 글로 썼다. 당시에는 글 쓰는 날이 장날이었는데 이제는 매일 장이 열린다. 계속해서 쓰다 보니 쓰기의 고통은 줄고 혜택은 늘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때부터 반복되던 습관이 나도 모르게 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굳어갔던 모양이다. 내 주변을 둘러봤다. 내 이웃들은 나보다 더 잘 쓰기도 하면서 자주 쓰기까지 했다. 비교는 나쁘다 하면서도 나의 게으름을 탓하기에 충분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야 따라갈 수 있다며 혼자 다짐하던 그런 때가 있었다.


무엇이 나의 생각을 가로막는지 고민해 봤지만 점점 미궁으로만 빠져간다. 그러던 중 지인의 뜻밖의 한마디가 위안이 되었다. 그는 옛 직장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직장을 옮겨서도 같이 일하게 되는 기적의 확률을 경험하고 나서부터 급격하게 친해졌다. 그와 나는 일적으로 만난 사이보다 사적으로 만나는 사이가 더 잦아졌고 지금은 친구처럼 만나서 술 한잔 기울이곤 한다. 그는 내가 이사했다는 말을 듣더니 한껏 들뜬 표정으로 자신의 경험을 말해줬다.


"이사하고 나니 아무것도 못하겠죠? 저는 한 한 달간은 집에서 멍하게 짐만 정리했어요. 일도 손에 잘 안 잡히고 잠도 잘 못 자고 여하튼 그랬었죠. 책임님 그럼 요즘 글도 못쓰겠네요."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더욱이 그는 내가 매일 글 쓴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 나는 더 말해달라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를 당겨 상체를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끅끅거리며 웃더니 주도권을 잡았다는 표정으로 조금씩 말을 이어갔다. 원래 이사하고 나면 혼이 나간다. 한 곳에 오래 살았을수록 그 충격은 크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와 너무도 꼭 닮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즘 내가 겪은 상황에 비춰봤다. 그가 느낀 당시의 상실감과 어색함이 나의 안도감으로 천이되는 과정을 목도했다. 사이다 한 병 원샷 때려도 해결되지 않던 목구멍 체증이 사라지는 듯했다. 몇 날 며칠 시름시름 앓으며 불치병이라던 병이 단 몇 마디 대화로 풀려버린 것이다.


그날 나는 집에 오자마자 글로 썼다. 그간 실낱같은 의지로 써내려 오던 글쓰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화수분처럼 생각의 덩어리가 솟구쳐 올랐다. 넘쳐나는 생각을 글로 주워 담기도 벅찬 상황. 그동안 어디가 막혔던 것인지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의 충만함을 느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야 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 매번 한결같은 톤으로 남들처럼 잘 쓰지 못해도 된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쓰지 못해도 된다는 생각 말이다.


쓸 수 있을 만큼 쓰고, 쓰고 싶을 때 쓰면 된다. 어차피 글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글이지 않은가.




요즘 마음에 여유가 없네요. 글에도 소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얼른 마음 다잡고 안정되면 자주 쓰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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