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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그리고 진심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스스로에게 환대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가장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몰랐다. 억울함에 몸서리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말하면 나에게만 적용되는 편협함 때문에 세상을 향한 외침이 아니라, 속 좁은 징징거림으로 보일 것 같아서.


매일 출근하면서 중얼이곤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조용한 외침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말에 대한 진심, 내 생각에 대한 진실을 파해칠지도 몰랐으니까.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내가 가만히 서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야밤에 훅하고 들어온 헤드라이트 환함에 멈춰버린 고라니의 심정이 이와 같을지도.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갑자기 모든 시야를 가릴 만큼의 밝음이 꼭 멈춰 서야 하는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단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침묵이 마냥 쌓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침묵은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이유를 동반한다. 왜 내가 그렇게 느꼈는지, 왜 힘들고 기쁜 것인지, 상대가 시큰둥하다면 사사로운 감정이나 조금의 거짓까지 보태기도 한다. 말하고 나면 후련해야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삭혀두었던 감정마저 모조리 꺼내는 바람에, 자신도 몰랐던 오해나 부정적인 기운에 사로잡히곤 한다.


혼자 끙끙대며 삭히지 말라고?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속에만 담아두면 모든 응어리가 굳어져 더 힘들 것이라고. 정말 그 말이 진리인 줄 알았다. 사사건건 말하는 것만이 사회를 대하는 올바른 용기고, 진심을 두고 에둘러 말하는 것은 겁쟁이의 생존방식이라고.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겨우 알 것 같다. 말하는 순간, 더 깊은 침묵이 찾아온다는 걸. 말하면 할수록 의지와 상관없이 더 겁쟁이가 되고 거짓말쟁이만 될 뿐이다.


행복을 나누면 기쁨이 두 배고, 슬픔을 나누면 불행은 반이 된다. 맞는 말이긴 하다. 당장에 표현하는 순간만큼은. 현실은 달랐다.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묘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 뒤에 담긴 냉소 또한 같이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내가 말하려는 게 거드름이고 자랑이었나, 아니면 표현을 잘못한 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표현해도 좋은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운빨이란 게 작용한 결과로 치부했다. 나 자신의 노력보다는 조상님의 덕을 더 부러워하는 눈치였으니까. 탐탁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누기만 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금전을 나누면 호구가 되는것 같고 속마음을 드러내면 스스로의 치부만 보여주는것 같다. 관계가 이래서 힘들고, 사회생활이 별나다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결국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모든 기쁨과 슬픔을 간직하고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침묵을 즐기며 혼자가 되겠다는 말이 아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싶을 뿐이다. 진심은 타인에게 있지 않다. 당장 슬프고 기쁨, 힘듦과 할만함에 대한 기준은 타인을 배제하고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진짜 별은 어둠 속에서만 빛난다. 깊은 밤을 오래도록 혼자 지낸 자만이 가장 순수하고도 영롱한 빛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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