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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너무 좋아”
요즘같이 바쁘고 힘든 날일수록 “좋다”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 것 같다. 실소나 해탈의 다짐으로 뱉는 말은 아니었다. 힘든 일을 하다 보면 평소와 다름없이 서소한 일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주문을 내뱉는듯했다. 이것은 상대적인 행복이라 봐야 할까?

업무를 하다 말고 돌파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축 처진 어깨만큼이나 기분과 희망이 늘어진 기분이 든다. 문득 화상회의 때 끼던 이어폰이 눈에 들어왔다. 홀린 듯 귀에 꽂고는 90년대 댄스곡을 듣는다. 는 감고도 무의식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어떻게든 힘이 났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춤사위와 섬광, 카메라 움직임을 기억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미세하게 떨리던 눈꺼풀이 그제야 가라앉는 듯했다. '아 좋아'

나에게 일요일이란, 쉬는 날 보다는 월요일 이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뭘 하고 싶어도 당장 내일 있을 출근길에 압도당하고 만다. 나들이를 가더라도 근교로 가야 했고 집에서 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늘 소파에 누워 한숨거리만 늘여 놓았다. 일요일을 많고 많은 감정 중 스트레스로 명하고는 혼자 시름시름 앓아 온 것이다.

월요일에 압박을 끊고 싶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건조한 마음에 단비를 찾아야 했다. 겨우 주어진 이틀의 권리를 찾아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요일만 되면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동글함 마저 월요일에 빅혀 있는 ‘이응’을 떠올릴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싫어하는 날에 더 좋아하는 일을 심어두면 어떨까라고.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있었다. 일요일 주문해서 로켓처럼 하루 만에 날아오는 택배거리를 만들거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사서 냉장고에 모셔두는 것이다. 생각보다 효과는 대단했다.

월요일 아침, 차에서 머금은 라테의 달콤함은 피로를 거슬러 올라 출근길의 무거움을 씻어내기 충분했다. 오후에 도착할 택배의 설렘은 직장에서 쌓아둔 번뇌마저 잊게 했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익숙한 옛 노래가 세상과의 경계를 닫아주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너무 좋아”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일상은 스펀지로 만든 입간판처럼 가벼워 보였다. 먹먹하던 귓속 이물감이 편안해지던 찰나, 소름이 돋고 말았다. 모든 상황이 그저 나를 행복으로 안내하기 위한 창조주의 계획일 뿐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나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비가 온다는 걸 알면서도 우산을 챙기지 않고는 날씨의 변덕만 나무란다거나. 물만 먹어도 살찐다며 부모님의 유전자를 탓하는 일 말이다. 전부 스스로 정한 눈높이에 맞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힘들 때마다 늘 듣던 말이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말이 폭력적일 만큼 맘 편한 소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원망으로 화답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 뜻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느끼는 포근한 감정의 이유를 ‘긍정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 "너무 좋아"라고 시도 때도 없이 말할 만큼. 어차피 감정에는 과정이 중요치 않은 것 같다. 강한 감정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감정이 강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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