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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증 집어던져봐?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내가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내 길인가.

언제부턴가 하던 일에 대한 불안이 가득하다. 점점 더 커져가는 의구심과 현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일자로 그으면 이대로 미래가 되는 것일까? 처음부터 이런 것이 미래라면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지금 내가 변곡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평생 직선 투정이나 하며 살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며칠 전에는 사원증에 벗어 돌돌 말아 딱지처럼 패대기치려 했다. 가슴팍에 대롱대롱 나부끼는 사원증만 만지작거렸다. '그래 너네 다 해 먹어라, 난 떠나련다'라고 또박또박 외치고 싶었다. 머릿속에서 백번 정도 시뮬레이션 해봤지만 시도해 볼 만한 시나리오는 없었다. 홧김에 해버릴까 망설이기만 할 뿐. 화가 솟구칠 때마다 뒷덜미가 얼얼하고 손끝과 발끝은 저려왔다. 몸에 보내는 이상 신호가 분명했다. 이럴 때 계속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목탁 두드리는 소리를 상상하며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화를 내면 반드시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참으면 참을수록 화는 내려앉을지 몰라도 온몸에 비쭉비쭉 솟구친 솜털은 쉽게 가라앉을 줄 몰랐다. 억눌린 마음만큼이나 숨소리도 거칠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점은 여기 까지라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내 눈을 가득 메우고 있을 불그스름한 핏대를 상상했다. 어떻게든 피신해야 했다.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곳으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한숨 소리와 함께 삐져나온 깊은 탄식이 처진 어깨에 여남은 바람마저 모조리 빼내가고 있었다. 순간 흠칫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생각만으로도 정말 실현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 났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속으로 중얼이는 속삭임조차 조심스럽다. 아직은 가정법이던 푸념을 누군가가 들으면 안 되는 거니까. 당장 집으로 가야 했다. 푸념할 틈이 없는 곳에서 그냥 쉬고 싶었다.


내가 접속할 수 있는 다른 세상은 겨우 스마트폰 화면이 전부. 이 작은 화면 속에서도 나처럼 번민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그곳에서는 무엇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람과 무엇으로도 돈을 벌 수 없다는 사람들로 시끌하다. 알려줘도 안 할 거니 전부 말해준다거나, 왕초보도 단 1시간 만에 돈을 벌 수 있거나, 부업으로 월 500 벌기 등, 검증되지 않은 무수한 속마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더 이상 혼자만의 욕구가 아니라 모두의 염원이 된 지 오래인 듯했다.


그날도 책을 읽었. 영상을 보다, 메모를 하다 러닝을 하러 갔다. 그리고 돌아와 샤워를 하고 글을 썼다. 퇴근 후 누운 채로 희멀건 하루를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당장 무엇으로 돈을 벌겠다 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부터 찾는 듯했다. 이왕이면 생계에도 보템이 되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도 함께. 막막하긴 해도 간절함이 결국 이긴다는 심정으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바쁘게 내달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평생이라는 말로 내 삶을 재단해 본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없던 용기도 생긴다. 처자식이 있으니 숨죽이며 쥐 죽은 듯 살아야 한다기보다는, 내가 살아야 모두가 산다는 패기로 치닫기도 한다. 나는 희생과 동반이라는 단어 사이 어딘가를 배회중이다. 어쩌면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가졌던 의구심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걷는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아니면 내 길은 맞는데 단단한 땅을 밀고 나갈 근력이 부족한 것인가? 무수한 회의론과 희망론을 오가며 내일을 맞이하려 한다. 그리고 확신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목적지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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